Vol.267
Sept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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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erence Sketch

ETRI,
다음 50년의 지도를 그리다

창립 50주년을 맞은 ETRI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AI가 세상의 작동 방식을 바꾸고, 기술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지금, 연구기관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기술은 우리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는가. 지난 1일, 서울 양재 엘타워에서 열린 ‘ETRI Conference 2026’은 그 질문에 대한 ETRI의 답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AI·DX 혁신으로 이끄는 함께 사는 따뜻한 세상’을 주제로 열린 콘퍼런스에서는 ETRI의 새로운 비전과 함께 앞으로의 국가 AI 전략을 이끌 핵심기술이 소개됐다.

50년의 기술,
다음 50년을 향하다

1976년 설립된 ETRI는 대한민국이 정보통신 강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국가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만들어왔다. 콘퍼런스는 단순하게 그 성과를 돌아보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 50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무엇을 준비할 것인지 집중했다.

먼저 박세웅 ETRI 원장의 미래 비전 발표가 시작됐다. ‘새로운 연구환경 속에서 ETRI가 지향하는 비전과 혁신 방향’​을 주제로 ETRI의 새로운 비전과 혁신전략을 들을 수 있었다.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과 AI 대전환, 새로운 연구환경의 변화 속에서 ETRI가 선택한 새로운 비전은 ‘AI·DX 혁신으로 이끄는 함께 사는 따뜻한 세상’이다. AI·DX를 통해 사람의 일손을 돕고, 이동의 편의를 높이며, 장애를 극복하고, 인간의 정보와 지식의 범위를 확장하는 등 ‘사람을 위한 기술’을 구현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한 ETRI의 혁신 전략의 핵심은 ‘4E 콤비네이션(Combination)’이었다. 본질적 기술혁신(Essential), 개방적 포용(Embracing), 연구활력을 높이는 환경(Exciting), 탁월한 성장(Excellent)을 결합해 연구와 경영 모두의 혁신을 추진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AI-Native 6G·위성통신 ▲안전한 AGI ▲입체공간 미디어 ▲피지컬 AI ▲공공/산업 AI·DX 등 5대 중점분야를 중심으로 R&D 역량을 집중하고, 인공지능 연구개발 집중(AI R&D Focusing), 임무형 플래그십 R&D, 차별적 코어기술 확보를 통해 국가 전략기술 개발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이 인상적이었다.

AI,
연구자의 동료가 되다

이후 첫 번째 전략기술 세션이 이어졌다. 주제는 ‘모두의 AI 과학자’였다. AI가 단순한 연구지원 도구로써의 역할을 넘어 연구자의 동료 수준으로 사용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ETRI는 AI가 가설을 세우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실험과 검증을 지원해 연구의 속도와 방식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AI for Science’ 시대를 준비 중이라 했다.

ETRI 인공지능연구소 권오욱 지능정보연구본부장은 ‘AI 과학자 실현을 위한 ETRI 기술 비전’ 발표를 통해 이러한 변화의 청사진을 소개했다. ETRI의 로드맵에 따르면 연구자가 AI와 함께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수행하는 인간-AI 협업형 ‘AI 연구동료’에서 출발해, 연구자가 방향을 제시하면 AI가 과학 에이전트와 실험실을 운영하는 ‘인간 감독형 자율과학 시스템’을 거쳐, 궁극적으로 AI가 연구 전 과정과 복수의 연구과제를 병렬로 수행하는 전주기 자율 연구 시스템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했다. ETRI는 2035년까지 연구 전 주기를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연구소장급 AI 과학자’ 개발에 도전한다고 했다. AI가 연구자의 진정한 ‘동료’가 될 미래가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이어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유용균 국가과학AI연구센터장이 ‘AI의 발전과 인간 과학자의 역할 변화’를 주제로 AI가 과학기술 연구의 방식과 과학자의 역할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국가과학AI연구센터(NAIS)를 중심으로 한 국가 AI 과학자 추진전략을 소개했다.

유 센터장은 AI가 과학적 발견을 가속하는 수준을 넘어 연구 자체의 시간과 방식을 변화시키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AI 과학자를 K-문샷 12대 미션을 비롯한 국가 과학기술 난제 해결의 ‘공통 가속 엔진’​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NAIS를 중심으로 국가 공통기반 인프라를 제공하고(Hub), ETRI를 비롯한 출연연이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연결해(Spoke) 국가 과학 AI 생태계를 구축하는 ‘강한 Hub+강한 Spoke’ 모델을 제시했다. ETRI는 AI 모델과 에이전트, 컴퓨팅, 네트워크 등 ICT 전 분야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국가 AI 과학자 생태계를 구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이기에 큰 기대가 됐다.

AI의 심장을 설계하다

이후 두 번째 전략기술 세션은 ‘AI의 심장-AIDC’를 주제로 진행됐다. AI 기술 경쟁력이 모델과 알고리즘을 넘어 GPU, 데이터, 네트워크, 클라우드, AI 반도체 등 대규모 컴퓨팅 인프라 경쟁으로 확산되면서 AI 데이터센터(AIDC)는 국가 AI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기반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이번 발표에서는 ETRI의 AIDC 기술 전략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ETRI 고광원 AIDC연구본부장은 ‘AIDC 완성을 위한 ETRI 기술 비전’을 통해 AIDC를 전력과 데이터를 투입해 ‘토큰과 AI 연산력’을 생산하는 ‘토큰 팩토리(Token Factory)’, 즉 AI 시대의 심장으로 정의했다. 이에 ETRI는 AIDC 경쟁력 확보를 위해 AI 반도체, 광인터커넥트, 광네트워크, AI 컴퓨팅 SW를 중심으로 HW부터 SW까지 아우르는 E2E 통합 인프라 기술을 확보할 계획이다. 특히 광인터커넥트와 광네트워크를 통해 대규모 AI 컴퓨팅 자원을 초고속 연결하고, 이종 AI 반도체 클러스터 최적화·추상화, 대규모 AI 모델 서빙, 자원 통합관리·스케줄링, AIOps 기반 운영 자동화 등을 통해 데이터센터의 통신·운영 효율을 높일 계획이라고 했다.

더불어 2031년까지 12.8Tbps급 광 I/O 칩렛과 3.2Tbps급 광트랜시버 기술을 확보할 계획을 공개했고, 전광 스위칭 기반 RDMA·인-네트워크 컴퓨팅으로 통신 병목을 해소하는 기술비전과 나아가 단일 거점 데이터센터에서 광역 분산형 AIDC, 지상·우주 컴퓨팅 자원이 연결되는 협업형 AIDC로 기술 영역을 확장 구상도 엿볼 수 있었다.

이어 NHN클라우드 이일준 이사는 ‘AI 인프라와 데이터센터’를 AI 확산에 따른 데이터센터의 변화와 산업 현장의 대응 방향을 소개했다. 이 이사는 CPU 중심의 기존 데이터센터가 데이터를 저장·처리하는 ‘계산기’였다면, AI 시대에는 대규모 GPU를 기반으로 AI 연산을 생산하는 ‘AI 공장’으로 역할이 변화하고 있다며, 향후 AI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GPU뿐 아니라 전력·냉각·네트워크 등을 아우르는 국가 차원의 AIDC 인프라 확충과 전략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AI 기술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과 동시에 그 기술이 누구를 위해, 어떤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지를 엿볼 수 있었던 ETRI Conference 2026이었다. 50년 동안 국가의 필요에 응답해온 ETRI가 이제 AI 시대의 새로운 질문 앞에 섰다. 그리고 그 답을 기술과 협력, 연구자의 도전으로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콘퍼런스에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새로운 혁신을 그려갈 ETRI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