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그다음이다. 외계인과 지구인이 공유하는 것은 거의 없다. 언어와 문화도, 살아온 환경과 감각 체계도 다르다. 로키는 눈이 없는 대신 청각에 의존하며, 그의 언어는 다섯 개의 성대에서 울리는 화음이다. 그럼에도 두 존재는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의도적인 신호 같은 걸 주고받으면서 말이 통하는 상대라는 걸 확인하고, 숫자와 주기, 원소와 물리 법칙 같은 공통 개념을 이용해 서로의 세계를 번역해 가며 대화한다.
이 방법은 실제로 SETI(외계지적생명탐사) 연구자들이 고민해 온 외계 문명과의 의사소통 방식과 닮았다. 1960년 수학자 한스 프로이덴탈이 제안한 우주 언어 ‘린코스’가 이런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전혀 다른 지성체가 먼저 공유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수학과 논리라는 생각에 근거한다. 과학자 칼 세이건도 비슷했다. 그는 서로 다른 생명체라도 같은 우주를 관찰했다면, 동일한 물리 법칙과 수학적 구조를 발견했을 것이라 믿었다.
놀라운 건 로키의 학습 방식이다. 로키가 속한 에리디언 종족은 완전기억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 번 들은 패턴을 모두 저장하고, 상대방이 하는 말의 구조를 파악하고 단어의 뜻을 추측할 수도 있다. 그걸 반복할수록 구조가 정교해진다. 그레이스의 말을 기억하며 스스로 언어의 패턴을 파악하는 모습은, 오늘날 AI 번역 모델이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로키는 그 자체로 생체 머신러닝 기계에 가까운 존재로 설정되어 있다.
물론 말이 통한다고 친구가 되지는 않는다. 수학과 물리학은 첫인사를 가능하게 할 뿐이다. 언어는 이해와 상호작용으로 이어져야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그때 필요한 것이 시간이다. 농담을 주고받는 시간, 함께 연구를 하는 시간, 서로 비밀을 털어놓는 시간. 둘의 시간을 채우는 것은 과학적 연구 방법이다. 로키가 모르는 사실을 그레이스가 알려주고, 그레이스가 제안한 가설을 로키가 수정한다.
이건 실제로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과학은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 한 사람이 관측하고 기록하거나 가설을 세우고 증명한 것은, 다른 사람의 검증을 거쳐야 사실이 된다. 발견은 혼자 할 수 있어도, 그것이 세상에서 의미를 갖기까지는 누군가의 응답이 필요하다. 그레이스와 로키는 그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정이 쌓이면서, 로키와 그레이스는 진짜 친구가 된다.
진짜 친구인지 어떻게 아냐고? 간단하다. 진짜 친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나를 위해 네가 죽어 달라고 하지 않는다. 지구인은 ‘인류를 위해 일한 다음 죽어달라’고 그레이스의 등을 떠밀었다. 외계인 로키는 그럴 필요 없다고, 끝까지 어떻게든 그레이스를 살리려고 애썼다. 일은 지구를 위해 했는데 삶은 로키가 보장해 줬다. 내가 한 희생을, 상대는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과학이 보편 언어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건, 종이 달라도 같은 우주를 보면 같은 것을 발견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같은 규칙 속에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는 우주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런 것은 기계와도 만들 수 있는 관계다. 생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존해야 한다. 공존하기 위해선 서로를 버리지 말아야 한다. 상대가 말이 통하지 않는 외계인이라고 해도.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그래서, 지구를 구한 영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 사람이 돌아갈 장소를 찾는 이야기다. 그레이스에겐 그곳이 지구가 아니었다. 우리에겐 어떨까? 영화가 끝나고 같이 본 친구가 그렇게 물었다. 로키가 지구에 왔어도 그레이스가 외계 행성에서 대접받은 것처럼 대우받을 수 있을까? “당연하지”라고 대답할 수 없어서, 꽤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요훈 IT 칼럼니스트
디지털로 살아가는 세상의 이야기,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IT 산업이 보여 주는 ‘Wow’ 하는 순간보다 그것이 가져다 줄 삶의 변화에 대해 더 생각합니다. KISTEP 기술영향평가 전문 위원, 한양대 미래인문학융합전공학부의 IAB 자문교수, 아리랑TV ‘비즈테크코리아’ 진행자 등의 일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