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63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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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감각, 기술과 만나다

디지털센트 이해룡 대표

사용자의 나이, MBTI, 좋아하는 색 등 본인의 취향을 반영해 AI가 향을 추천해 주는 기술은 상상해 봄 직하다. 하지만 이를 뛰어넘어 시향을 돕고, 물성이 있는 향수로 제작해 사용자에게 바로 제공해 준다면? 이를 가능하게 만든 기업이 있다. 바로 디지털센트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은은한 향기가 가득했다. 향기로운 공간에서 이해룡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대표님과 디지털센트를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디지털 향기를 통해 사람의 감각과 기술을 연결하고 있는 디지털센트 대표 이해룡입니다. 디지털센트는 보이지 않는 향을 데이터로 정량화하고, 저장·분석·재현 가능한 형태로 구현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이에요. 쉽게 말씀드리면, 감각을 기술로 다루고 누구나 동일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거죠. 현재는 AI 기반 향기 추천부터 실시간 시향, 정밀 블렌딩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한 인숍(In-shop)형 AI 향수 키오스크를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ETRI에서 후각 인터페이스와 디지털 향기 기술을 연구해 왔고, 이 기술을 실험실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실제 시장에서 작동하는 서비스로 구현하고 싶어서 창업하게 됐습니다.

‘후각’이라는 영역에 주목하게 되신 계기와 창업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후각은 인간의 오감 가운데 가장 늦게 디지털화된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ETRI에서 연구하던 시절을 돌아보면, 시각과 청각은 이미 산업화가 많이 진행된 상태였는데, 후각은 여전히 측정도 어렵고 저장도 어렵고 전달도 어려운 감각으로 남아 있었거든요. 저는 오히려 그 점에서 가능성을 본 거예요. 아직 제대로 풀리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에 더 큰 기회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후각은 기억이나 감정, 그리고 건강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잖아요. 치매 초기 징후로 후각 저하가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해서 진단기기 개발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향기를 데이터로 다룰 수 있다면 새로운 산업이 가능하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그렇게 연구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창업으로 이어졌고요. 지금은 헬스케어를 넘어 뷰티와 라이프 스타일까지 확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CES 2026에서 AI 기반 향기 시스템을 선보이셨습니다. 이 기술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CES 2026에서 선보인 시스템은 추천부터 시향, 조향, 생산까지 하나로 연결된 Closed-loop1)Closed-loop(폐루프): 사용자의 향 선택·미세 조정·확정·제조 전 과정이 디지털 데이터로 기록되고, 이 데이터가 다시 추천 및 향 생성 과정에 반영되어 지속적으로 최적화되는 순환형 시스템. 향기 플랫폼이에요. 기존에는 추천을 받더라도 시향이 따로 이루어지거나, 시향을 해도 제품 제작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저희는 이 단절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했습니다. 사용자가 AI 추천을 받고, 바로 향을 맡아보고, 조금 더 부드럽게 할지 산뜻하게 할지 조정한 뒤, 그 자리에서 향수로 만들어지는 구조예요. 그리고 중요한 건 이 과정이 데이터로 계속 쌓인다는 점입니다. 사용자의 선택이나 반응, 조정 이력이 모두 기록되고, 이 데이터가 다시 추천 성능을 높이는 데 활용되거든요. 결국 사용할수록 더 똑똑해지는 시스템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5월 중에는 대전 유림공원과 삼척 장미공원에서 진행되는 축제에 체험형 부스가 마련될 예정이에요.

CES 2026에서 선보인 AI 기반 향기 시스템

AI 기반 향기 시스템은 타 업체와 어떤 차별점이 있나요?

기존 향수 시장은 추천, 체험해 볼 수 있는 시향, 그리고 실제로 향수를 만드는 블렌딩이 분리된 구조였어요. 저희는 이걸 하나로 통합했습니다. 추천을 받으면 바로 경험하고, 그 결과를 다시 조정해서 최종 제품으로 만드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한 거죠. 그래서 사용자는 단순히 추천받는 게 아니라, 직접 확인하고 완성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또 하나는 향을 데이터로 남긴다는 점인데요. 최종 향을 정량값으로 저장하기 때문에 언제든 동일하게 재현할 수 있고, 장소가 바뀌어도 같은 품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결국 추천, 경험, 생산, 데이터화가 끊기지 않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게 핵심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후각 치매 진단기기부터 향기 시스템까지. 헬스케어 분야에서 뷰티 분야로 확장하고 계십니다. 보유 기술을 새로운 산업에 적용하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부분은 무엇인가요?

저는 기술을 다른 산업에 적용할 때, 기술의 본질은 유지하되 시장의 언어로 다시 설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헬스케어는 정확도와 신뢰성이 핵심이지만, 뷰티는 경험과 감성, 그리고 즉각적인 만족이 더 중요하거든요. 같은 기술이라도 어떤 맥락에서 전달되느냐에 따라 고객이 느끼는 가치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저희는 동일한 후각 기술을 기반으로, 헬스케어에서는 진단 정확성으로, 뷰티에서는 개인화된 경험으로 전달되도록 설계하고 있습니다. 결국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회사 운영의 어려움은 무엇이며 반대로 즐거움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가장 어려운 점은 보이지 않는 가치를 설명하는 일입니다. 향기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기술의 성과를 직관적으로 전달하기가 쉽지 않고, 여러 기술이 결합된 융합 사업이라 개발과 사업화 난도도 높은 편입니다. 새로운 개념을 시장에 이해시키고, 실제 구매로 이어지게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큰 보람은 고객의 반응이에요. 시향 후에 “이건 제 향 같아요”라는 말씀을 들을 때, 기술이 단순 기능을 넘어서 개인의 기억이나 감정과 연결된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게 계속 이 일을 하게 만드는 힘인 것 같아요.

창업을 고민하는 후배 연구원에게 조언해 주신다면요?

연구자에게 창업은 기술을 검증하는 무대가 연구실에서 시장으로 옮겨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실에서는 기술 완성도가 중요하지만, 시장에서는 고객의 선택과 반복 사용으로 평가받거든요. 그래서 창업을 고민할 때는 기술이 뛰어난가보다, 실제로 필요한가를 먼저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또 창업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기술과 사업, 조직이 함께 맞물릴 수 있는 팀과 실행력이 필요합니다. 연구자의 깊이는 유지하시되, 시장을 바라보는 시야를 함께 넓혀가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연구자가 좋은 창업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센트의 향후 계획과 비전을 말씀해 주세요.

디지털센트의 목표는 단순히 향수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향기의 디지털 표준을 만드는 것입니다.

현재는 AI 향수 키오스크를 통해 오프라인에서 개인화된 향기 경험을 제공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향기를 데이터로 저장하고 공유하고 다시 재현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확장하려고 합니다. 음악이나 영상처럼 향기도 코드화되어 언제 어디서나 동일하게 구현되는 환경이 가능해질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한국에서 시작된 디지털 향기 기술이 글로벌 기준이 되고, 새로운 감각 산업의 표준을 만들어가는 것이 저희의 방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