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61
Apr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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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DEN STORIES

냉혹한 기계 재판일까,
최선의 사법 시스템일까

AI 재판 과정을 생생하게 그리다, 영화 ‘노 머시: 90분’

최근 개봉한 스릴러 영화 ‘노 머시: 90분’은 인공지능(AI) 재판 시스템이라는 독특한 주제를 다뤘다. 2029년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아내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형사가 사형 집행까지 남은 90분 동안 인공지능(AI) 판사 앞에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는 숨 가쁜 변론 과정을 그린다. 2008년 히트작 ‘원티드’의 감독을 맡았던 ‘티무르 베크맘베토브’가 메가폰을 잡았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주연을 맡았던 ‘크리스 프랫’이 주인공 ‘레이븐’ 역을 맡았다. 국내에선 총관객 수 10만 명(2월 4일 개봉작, 3월 9일 기준)에 그쳤지만, 북미 지역에선 한때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기도 하며 나름 흥행에 선방했다.

AI로 감싼 액자 구성

사진 제공. 소니픽처스코리아

영화의 주 무대는 2029년 근미래의 로스앤젤레스. 늘어나는 강력 범죄 건수로 인하여 당국은 AI가 증거 수집, 판결, 사형까지 모두 처리하는 법정 시스템 ‘머시’를 도입하게 된다. 범죄 발생 시 AI가 모든 디지털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용의자가 진범일 가능성을 예측한다.

이 과정에서 용의자에게는 90분간의 소명 시간이 주어지고, 이 90분 동안 ‘진범일 확률’을 즉결 처분 기준보다 낮은 92% 이하로 떨어뜨려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변론을 위해 앉아 있던 의자에서 그대로 사형 처분된다. 이 시간 동안 용의자는 머시 법정 시스템으로부터 모든 데이터와 분석 기능을 지원받을 수 있다. 용의자는 현장 주변의 CCTV, 주위를 지나던 사람의 스마트워치, SNS 등은 물론 증인이 남긴 모든 영상 기록까지 살펴볼 수 있으며,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몸에 착용하는 ‘바디캠’ 촬영 영상까지 확인할 수 있다.

영화는 ‘인간의 생명이 걸린 중대한 결정을 감정 없는 기계가 통제한다는’ 설정을 통해,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우리는 현실에서 AI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상영 시간 대부분을 의인화 AI 매독스(레베카 퍼거슨 분)와 레이븐 사이의 취조 과정(?)에 할애하고 있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대략 100분인데, 이 중 90분이 정확하게 매독스와 레이븐의 갑론을박 과정을 실시간으로 담아낸다. 현실에서 이뤄졌던 다양한 사건을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되짚어가는 식이다. 어찌 보면 전통적인 ‘액자 구성’의 색다른 형태로도 여겨졌다.

AI는 정말 악인가?

안타까운 점은 영화가 시종 AI를 ‘언짢은 존재’로 부각한다는 점이다. AI는 용의자를 사형시키기 위해 존재하며, 주인공은 그 억울함을 풀기 위해 베테랑 형사의 끈질긴 ‘직감’과 ‘집념’을 무기로 도전한다. 마치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기계적 논리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인간만의 통찰이 존재한다, 그러니 인간은 AI보다 우월한 존재다’라고 항변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구성이다.

안타깝지만 현실에 이 같은 시스템이 도입되긴 어렵고, 영화 같은 극적 상황이 생겨날 가능성도 없다. 애당초 법정에 AI 시스템을 도입하는 이유 자체가 ‘인간 시스템의 한계’ 때문이다. 사람이 재판하는 것보다 공정하고, 사람이 재판하는 것보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하다고 판단되지 않는다면 AI에게 인간에 대한 판결을 맡길 리 없다. 이 설정 속에서 다시 ‘AI 시스템은 인간미가 없으니 좋지 않다’고 항변하는 흐름은 어찌 보면 모순에 해당한다.

사실 AI의 사법 시스템 도입은 이미 현실에서도 여러 사례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유럽의 소국 에스토니아인데, 이곳에선 이미 2019년부터 AI 판사가 벌금 약 1,000만 원 이하 소액 재판을 담당해 왔다. 다만 영화와 달리 현실의 AI는 적잖은 실수를 일으키므로, 결과에 불복한 사람은 다시금 인간 재판관에게 판결을 받을 수 있다. 아직은 기술이 부족하므로 AI의 장점만을 취하고, 단점은 제도를 통해 보완하고 있는 사례다.

‘AI 사회의 도래’라는 피할 수 없는 명제를 놓고 사회적 불안이 높아지고 있다. ‘노 머시: 90분’과 같은 영화는 그런 대중의 심리를 노린다. 그러나 미래는 AI가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영화를 보며 오히려 긍정적으로 여겨졌던 부분은, 9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용의자의 ‘변론’을 위해 거의 전지적 기능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현실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사람에게, 이처럼 모든 정보를 철저히 살펴볼 수 있도록 해 주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최근 국내에서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한 ‘재판지원 AI 시스템’을 시범 도입했다고 한다. AI를 ‘시민의 조력자’로 보는 것이다. 영화 정도는 아니지만, 전문 변호사를 고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될 수 있을지 기대된다.

비단 법정 체계뿐 아니다. AI는 더 공정한 시스템을, 더 효율적으로 제공할 때 그 의미가 생긴다. 지금은 우리 인간 스스로 그런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할 때다. 기술이 가치를 갖는 건 ‘인간을 향할 때’ 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