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66
Aug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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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2

반도체 최강국이 되기까지,
실리콘에 쌓아 올린 혁신의 시간

반도체는 스마트폰과 자동차,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까지 현대 산업 전반을 움직이는 핵심 기술이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처음부터 반도체 강국이었던 것은 아니다. 기술도, 산업 기반도 부족했던 시절부터 연구개발을 이어온 수많은 연구자의 도전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그 중심에는 반도체 원천기술을 축적하고 산업계와 함께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 온 ETRI가 있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시스템 반도체, AI 반도체와 차세대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반도체 기술의 역사는 곧 ETRI의 연구개발 역사와 맞닿아 있다.

기술 불모지에서 시작한 첫 번째 도전

1970년대는 세계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미국과 일본 등 기술 선진국은 반도체를 미래 산업의 핵심으로 판단하고 대규모 투자를 이어갔으며, 기술 보호 정책을 강화해 후발 국가의 진입 장벽을 높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반도체 기술과 산업 기반이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국내 반도체 연구는 1970년대 초 KIST 반도체장치연구실에서 시작됐다. 이후 1976년 이 연구실은 ETRI의 전신인 한국전자기술연구소(KIET)로 공식 출범하면서 본격적인 연구개발 체계를 갖추게 된다. KIET는 MOS 기술, VTR용 Bipolar IC 기술, ROM 칩, 반도체 설계와 생산 지원 기술 개발을 추진하며 국내 반도체 연구의 기초를 다졌다. 1982년에는 메모리 소자인 32K ROM 개발에 성공하며 우리나라 반도체 기술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연구소의 성과는 산업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당시 축적된 설계 기술과 공정 기술은 국내 반도체 산업이 자체 기술력을 확보하는 기반이 됐으며, 이후 정부와 산업계가 함께 참여하는 대형 국가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됐다.

메모리에서 시스템 반도체까지, 대한민국 반도체의 성장 엔진

1986년 정부는 ‘4M DRAM 공동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ETRI를 중심으로 삼성반도체통신, 금성반도체, 현대전자,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가 참여하는 초고집적 반도체 공동개발사업을 추진했다. 국가 연구기관과 기업이 힘을 모은 이 사업은 국내 반도체 산업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공동개발의 성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1989년 4M DRAM, 1991년 16M DRAM을 개발하며 반도체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이어 1992년에는 세계 최초로 64M DRAM을, 1994년에는 세계 최초로 256M DRAM 개발에 성공하며 세계 메모리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과 연구 경험은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는 기반이 됐다.

ETRI의 연구는 메모리 분야에만 머물지 않았다. 1982년 5μm 실리콘 게이트 nMOS 공정을 시작으로 국내 최초의 8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K8048)를 개발했고, TDX용 ASIC, CDMA용 RF CMOS 칩, 세계 최초 DMB 칩셋, 임베디드 DSP, HEVC 코덱 SoC, 드론 탐지용 지능형 레이더 칩 등 다양한 시스템 반도체 기술을 개발하며 국내 시스템 반도체 기술 경쟁력 확대에 기여했다.

(위) 1989년에 개발된 4M DRAM-1
(아래) 1991년에 개발된 16M DRAM

AI 시대를 준비하는 미래 반도체 연구

2010년 이후 반도체는 AI와 자율주행, 로봇, 바이오 등 다양한 산업의 핵심 기술로 자리 잡았다. ETRI는 기존 시스템반도체 연구를 넘어 멀티미디어와 이동통신, 인체통신 등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며 연구 영역을 넓혀왔다. 2011년에는 고효율 HEVC 코덱 SoC 기술을 개발해 자동차와 드론, 로봇용 영상장치에 활용되는 기반을 마련했고, 인체통신 칩 기술은 2012년 IEEE BAN 국제표준으로 채택됐다. 또한 2020년에는 다중 드론을 탐지하는 지능형 레이더 칩을 개발하며 시스템반도체의 응용 범위를 확장했다.

AI 시대에 맞춰 ETRI는 독자 구조의 AI 프로세서 알데바란(AB) 개발에도 나섰다. 2016년 AB3, 2017년 AB5, 2020년에는 딥러닝 연산에 특화된 AI 프로세서인 AB9을 개발했으며, 모바일 에지·IoT 환경을 위한 저전력 시각인지 고속 추론 프로세서 VIC 칩도 선보였다. 이를 통해 AI 반도체 분야의 핵심 기술을 꾸준히 축적해 왔다.

차세대 반도체 연구도 이어졌다. ETRI는 실리콘과 탄화규소(SiC) 기반 전력반도체를 개발해 전기자동차와 태양광 분야에 활용 가능한 핵심 기술을 확보했으며, 이차원 반도체 분야에서는 대면적 제조 기술과 세계 최초의 친환경 액상 박리 기술을 개발했다. 또한 국방 분야에서는 GaN RF 전력증폭 소자, MCT(MOS Controlled Thyristor)1)MCT(MOS Controlled Thyristor): MOSFET을 이용해 켜기와 끄기를 모두 전압 펄스만으로 제어할 수 있는 완전 제어형 전력반도체 소자이다., LTT(Light Triggered Thyristor)2)LTT(Light Triggered Thyristor):고전압, 고전류를 제어할 수 있는 광점호형(光点火型) 트라이액(Thyristor) 소자로, 주로 펄스파워 시스템에 사용된다. 등 고전력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며 미래 산업과 국가 핵심 분야로 반도체 기술의 활용 영역을 넓혀왔다.

메모리반도체에서 시작된 ETRI의 연구는 시스템반도체와 인공지능 반도체, 차세대 반도체로 꾸준히 확장됐다.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기술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축적한 연구개발 역량은 대한민국 반도체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인공지능 반도체 AB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