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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방송 통신 기술을 만나다
미디어방송연구실 안성준 선임연구원

Vol.257 November

브라질이 ETRI의 지상파방송 전송기술을 차세대 방송 표준으로 채택했다.
이 기술은 전송용량을 적은 비용만으로도 효율적으로 늘려주는 기술이다.
해당 기술이 방송 표준이 되기까지,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듣고자 미디어방송연구실의 안성준 선임연구원을 만났다.
그는 어린 시절 TV가 항상 켜져 있던 거실의 풍경을 회상하며
미디어에 대한 애착을 표했다.
연구원에서 미디어 콘텐츠를 가까이 다룰 수 있어 친근함을 느낀다는
안성준 선임연구원은 제작팀의 질문에 섬세하게 답변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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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님이 개발에 참여하신 ATSC 3.0 기반 MIMO와 LDM 결합 전송기술을 설명해 주세요.

우선 ATSC 3.0은 북미의 지상파방송 전송 표준입니다. 이동통신에 LTE, 5G가 있듯 방송 통신에도 표준기술이 있는데요, ATSC 3.0이 최신 세대 표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전 세대에 비해 30%의 효율이 증대되는 등 여러 방면에서 진보가 이루어진 표준이고,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부터 UHD 방송에 적용되고 있어요. 미국 본토에서는 살짝 뒤, 2020년경부터 상용화가 되었습니다.

MIMO1)는 ‘다중 입력 다중 출력’의 줄임말이에요. 송신기와 수신기가 각각 여러 개의 안테나를 갖고 신호를 주고받는 방식이죠. 여기에 ‘공간 다중화’라는 기법을 적용합니다. 신호를 보낼 때 독립적으로 나누어진 두 ‘신호 공간’에 데이터를 병렬로 보내는 기법이에요. 방송에서는 수직편파와 수평편파 전파들을 그렇게 취급하고 있어요. 기존에 단일 안테나만 사용할 때보다 2배의 데이터를 같은 자원 조건에서 보낼 수 있게 되는 기술이에요.

마지막으로 LDM은 우리말로 하면 ‘계층 분할 다중화’라고 할 수 있어요. 두 개의 서비스 신호를 신호 세기를 달리해 겹쳐 보내는 방식입니다. 원래는 서로 다른 주파수나 다른 시간에 아예 분리해서 보내는데요, LDM은 같은 주파수와 같은 시간에 두 개 신호를 말 그대로 ‘중첩’해서 보냅니다. 수신 쪽에서는 두 신호의 세기가 다른 걸 이용해서 분리해 내는 기법을 사용하고요.

두 개의 병에 큰 돌멩이, 모래 알갱이를 채운다고 가정해 봅시다. 한 병에는 돌멩이만, 다른 병에는 모래만 채운다면 돌멩이 사이의 공간이 채워지지 않아서 얼마 못 채울 겁니다. 반대로, 두 병 모두에 큰 돌멩이를 먼저 다 채우고 빈 공간을 모래 알갱이로 메운다면, 훨씬 많은 양을 담을 수 있겠죠? LDM은 이런 느낌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한 기법이에요.

우리가 개발한 기술은 ‘ATSC 3.0 표준’ 구조에서 ‘MIMO 신호’를 ‘LDM 방식’으로 중첩해 보내는 시스템입니다. 그럼, 전송용량이 MIMO 덕에 배가되고, LDM 효율성 덕에 더 증폭되겠죠? 결국 적은 자원 비용에 최대한 품질 좋은 서비스를 많이, 다양하게 제공하는 원천기반기술이라고 할 수 있어요.
1) Multiple-Input Multiple-Output

img3MIMO와 LDM의 결합 기술

개발하신 MIMO와 LDM 결합 전송기술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MIMO와 LDM의 결합을 Layered MIMO라고 부르는데요, 여기에는 두 가지 타입이 있다는 것이 큰 특징이에요.

첫 번째 형태, Type A는 MIMO 신호와 MIMO 신호 간의 중첩이에요. 브라질처럼, 아예 새로운 인프라를 처음부터 구축해서 전환하려는 경우엔 새로 보급될 수신기만 생각하면 되겠죠? MIMO 형태의 수신기가 새로 깔릴 것이라고 생각해 전송데이터량 증폭에만 초점을 두고 만들 시장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인 거예요.

두 번째 형태, Type B는 SISO2)와 MIMO 신호 간의 중첩이에요. 이건 우리나라나 미국처럼, 이미 ATSC 3.0 SISO 방식이 정착돼 국민이 SISO 수신기를 많이 가지고 있는 시장에 자연스럽게 MIMO가 스며들 듯 도입되게끔 하는 방식이죠.

SISO 수신기에 보이지 않지만, MIMO 신호가 낮은 세기로 깔려있고, 새로 배포되는 MIMO 수신기들은 이걸 인식할 수 있는 거죠. 기존 수신기들에 영향을 주지 않게끔 저희가 굉장히 정교하게 설계하려 노력한 부분이기도 해요. 이런 ‘역호환’ 이중 중첩전송 개념은 상당히 넓은 분야로 확장될 수 있는 아이디어로 예상되고, 저희 설계는 그 시초로서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2) SISO(Single-Input Single-Output): 단일 입력 단일 출력, 단일 안테나 기반 전송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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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이 차세대 방송 표준으로 ETRI의 기술을 채택했습니다. 박사님께서는 이것을 단순한 ‘기술 수출’을 넘어서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이번 브라질 표준화는 방송통신 산업에서 하나의 기점이자 돌파구가 되는 이벤트였어요. 그동안 MIMO 방송이 상용화될 기미가 거의 없었거든요. 기술 실증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산업 전반의 분위기였어요. ‘MIMO를 도입하면 회로나 안테나도 더 달아야 하는데, 기존 인프라나 제품 생산 프레임을 바꾸면서 기술을 도입하고 싶지는 않다’라는 입장이 강했죠. TV 제조사들부터가 이 산업을 캐시카우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새로운 공정을 넣고 움직이고 싶지 않아 했고요. 게다가 아직 ATSC 3.0과 같은 2세대 표준기술의 SISO 버전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도 얼마 안 됐거든요.

그래서, MIMO를 ‘누가 쓰고 있는가?’, ‘깔린 시작이 있는가?’ 이 사실이 중요했어요. 시장이 이미 있는 상태이면 제조사들도 그에 맞춘 제작 공정을 가진 상태일 테니 허들이 낮기 때문이죠. 이 고착 상태를 브라질이 뚫어준 거예요. 즉, MIMO가 확산할 첫 관문을 ETRI가 주도해서 뚫은 거죠.

더불어 이번 기술이 중요한 점은, 기존에 ATSC 3.0 SISO가 정착된 국가에서도 현행 서비스를 유지하면서 MIMO를 자연스럽게 도입할 수 있는 기술도 함께 만들었다는 거예요. 해외에서는 ‘역호환 MIMO(Backward-compatible MIMO)’라고 홍보됐는데요, 전면 전환이 불가한 지역에도 MIMO를 바로 도입할 수 있도록 도입 장벽을 없앤 것이라고 보시면 돼요.

기술적으로도, 물리적으로 상이한 수신기들을 동시에 지원하는 전파중첩 기술을 만들었다는 점이 큰 진전이에요. 앞으로는 경량 IoT 기기와 VR 같은 고성능 미디어 기기를 하나의 전파신호로 지원할 수 있게 될 거예요. ETRI가 MIMO 방송의 역사적 전환점을 사실상 단독으로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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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술을 연구하고, 브라질 방송 표준으로 채택되기까지 박사님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붙잡고 씨름했던 난제는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내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저는 미국 표준화를 전적으로 담당해서 진행했어요. ATSC 3.0의 개정표준 문서를 작성하는 작업을 담당했죠. 그런데 브라질 표준화와 맞물려 ATSC 3.0 MIMO도 빠르게 표준화되어야 했어요. 신속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세계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내용, 문장을 만들어야 했어요. ETRI 차원에서의 지재권 확보도 함께, 긴박하게 이뤄져야 했고요. 상당한 분량의 기술 설계 전체를 작성해서 그대로 표준문서로 배포되도록 하는 작업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기존의 표준시스템 구조와 언어, 그리고 우리가 제안하는 내용들 전체가 이물감 없이 맞물리도록 한 문장 한 문장을 만들어내야 했어요. 전체를 관통하는 규칙을 만들고 어떤 케이스에서도 예외 없이 말이 되는지, 그리고 이게 기존의 ATSC 3.0을 이루는 철학이나 언어에 잘 묻는지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했죠. 다른 진영에서 문제 삼을 부분이나 표현이 있는지, 우리의 지재권을 잘 지킬 수 있는지, 그리고 이 표준이 추후 더 확장된 것을 안배하는 요소를 두게 하는 것까지 복잡한 고려 사항이 많았어요.

이 과정에서 그동안 작문을 많이 해두었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고,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 선배 연구원님들께 의견을 많이 구하면서 풀어낼 수 있었어요. 어떤 액션을 취하면서 진행해야 최대한 어려움 없이 우리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반영할 수 있을지, 많은 논의를 했죠.

당시 연구비 삭감으로 인해 ETRI 내부적으로도 어려움이 많았는데요. 부서 내부적으로도 연구비가 90% 정도 삭감되면서 여러모로 상당히 안 좋은 상황에서 표준화까지 진행하느라 어려움이 많았어요. 함께한 선배 연구원분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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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님께서는 연구자로 살아오시면서 늘 마음속에 새기는 원칙이나 신념 같은 것이 있으신가요?

원칙이나 신념은 아니지만, 유념하는 지점은 있어요. 흔히 본인의 정체성을 잘 파악하고 정립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저는 연구자의 여러 형상 중 따지자면, 작가에 가까운 부류가 아닌가 싶어요. 창작물을 글이나 다른 형태로 가시화해서 내놓는다는 측면에서는 글 작가, 그림 작가, 영상 작가 등의 연장선에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그래서 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경계하고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동시에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때문에 여러 범주에서의 감각을 만들려 노력하고 있어요. 일부러 책도 이것저것 읽으려고 하는 편이고요. 창작물을 신선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감각, 그런 걸 갖추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img3다양한 영감의 원천이 된 책들. 모두 안성준 선임연구원의 개인 소장 도서다.

해당 성과 이후, 박사님이 그리고 계신 방송 기술의 미래는 어떤 풍경이 담겨 있나요? 남미를 넘어 세계 방송 환경에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전망을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방송은 단순히 TV 프로그램을 전달하는 역할을 넘어, 사회나 산업을 움직이는 인프라로 발전하지 않을까 싶어요. 예전에는 방송이 미디어를 소비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에 ‘방송 기술을 다른 분야에 활용한다’라는 발상 자체가 드물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미디어 환경이 다양해지면서, 방송 기술의 특징이 어디에서 새로운 가치를 낼 수 있을지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방송의 고용량 고출력 전송기술이 이동통신의 무선백홀(기지국 간의 연결망) 인프라로서 기능한다거나, 시설 간 장거리 통신에 사용될 수 있어요. 이건 캐나다에서 국가 프로젝트로 개발하고 있는데, MIMO 방송이 직접 적용되는 부분이기도 해요.

또, GPS가 기능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대안으로서 방송 신호가 표준시계를 제공하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어요. 이건 미국 정부 지시에 따라 개발되고 있는 기술로 BPS(Broadcast Positioning System)라고 불리는데요, ETRI도 ATSC 3.0 BPS의 핵심기술을 개발하고 있어요. 방송망이 국가 주요 기반 시설로 인식되는 부분도 있고, 전 국토를 포괄하게끔 설계되기 때문에 상당히 설득력 있는 미래로 보여집니다. 방송망을 레이더에 사용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겠고요. 추가로, 차량이나 기기 단말의 광역 OS 업데이트나 교통정보 전송 등 대규모 공통 데이터를 전송하는 방송서비스가 이루어질 것으로도 예측하고 있어요. 이전과는 달리 응용이 다각화, 다변화될 것으로 예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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