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문화유산을 위한 연구
콘텐츠융합연구실 이재호 책임연구원
Vol.255 September
ETRI는 문화유산이 디지털 안에서도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전국의 박물관을 방문해 문화유산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플랫폼을 만들며 표준화까지 진행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누구나 할 수 없기에 특별하다고 말하는 이재호 책임연구원.
그의 목표는 유럽의 유로피아나1)와 같은 아시아 문화유산의 표준인
‘가칭 Asiana’ 같은 규정을 제정하는 것이다.
오늘도 그는 문화유산을 다음 세대와 더 넓은 세계로 연결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1) 유로피아나(Europeana): 유럽 연합의 전자 도서관 프로젝트. 1,000여 개의 문화단체에서 제공하는 약 460만 개 이상의 서적, 신문, 동영상, 지도, 사진 등을 온라인으로 손쉽게 검색해 찾아볼 수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의 영향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점점 더 디지털 세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결국 디지털 세상에서의 콘텐츠 점유율이 국가의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죠.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유럽과 같은 선진국들은 디지털 세상에서의 주도권을 가지려고 적지 않은 기술과 금액을 문화유산에 투자하고 있어요. 중국 같은 경우는 김치, 한복 등 실제 세상에서도 우리나라의 문화를 본인들의 것이라며 주장하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기도 했죠.
그런데, 문화유산 데이터에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문화유산 데이터에 접근하려고 하면 데이터를 얻는 문제뿐 아니라, 데이터 검증도 어려운 경우가 많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TV에서 만드는 역사극에서도, 고려시대의 배경에 조선시대의 물건들을 활용하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우리는 문화유산 데이터를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하고, 검증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점점 치열해질 AI 기반 관련 기술개발과 문화유산의 디지털 활용에 조금 더 좋은 위치에 있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판단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개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기술과 AI 기술을 문화유산에 접목해 문화유산의 가치와 활용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어요. 핵심 기술은 문화유산 디지털 플랫폼 개발이라 할 수 있죠.
지난 수십 년간, 세계 곳곳에서 문화유산과 디지털 각기 다른 두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업하고 있기는 해요. 하지만 경험과 지식에 차이가 있어서 결과물이 나오는데 많은 시행착오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데이터 구조, 활용성의 한계, 박물관 프로세스와의 충돌 등 다양한 이슈가 있기 때문에 더 어렵기도 하고요.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연구팀은 빠른 디지털 데이터 접근성과 다양한 활용성을 제공하는 플랫폼 개발에 성공했는데요. 국립중앙박물관 종사자와 협업하며 실제 업무에 적용한 실증을 진행했죠. 국내 박물관 문화유산 디지털 전환 분야에서 대한민국이 세계적 선두 자리에 다가가는데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어요.
특히, 국립중앙박물관 중앙로비에 구축된 ‘디지털 광개토대왕릉비’에 공동연구기관인 문화유산기술연구소가 개발된 디지털 문화유산 애셋 기반 데이터 체계를 사용했어요. 외국에서 돌아오지 못하거나 접근이 힘든 우리 문화유산에 대해 ‘디지털 귀환’이라는 좋은 실제 적용사례를 보여준 것 같아 기억에 많이 남아요.
디지털 문화유산 표준 프로세스는 기존 유산뿐 아니라 VR, 디지털트윈, 메타버스 등 다양한 활용을 위한 데이터의 가용성을 보장해요. 이를 통해 박물관 종사자들이 기술 장벽 없이 고품질 데이터를 직접 다루며, 문화유산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죠. 이 표준 프로세스를 통해 제작된 데이터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문화유산을 구현하고, 각종 전시와 보존,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도 있어요. 특히, 특정 국가의 왜곡이나 디지털 침략 가능성에 대응해 우리 유산의 정체성과 확장성을 지키는 전략적 수단이기도 해요.
결국 디지털 문화유산 표준 프로세스는 AI 기술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이 문화 강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져요.
2020년도에 처음으로 연구개발을 진행하면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국보급 문화유산들을 적극적으로 개방해 디지털 애셋 작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협력해 주셨어요. 이러한 협력에 힘입어 인천국제공항 터미널에 있는 27미터 높이의 미디어월에 반가사유상을 기반으로 하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었죠. 이 콘텐츠는 현재 서울 고속터미널, 신세계 백화점 등에 활용되고 있어요.
개발 초기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문화유산전문가와 소통하고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들었어요. 서로 쓰는 전문 용어와 연구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죠. 그때 기억이 생생해요. 하지만 그 경험이 있었기에 적극적인 협력이 가능했고, 그에 걸맞는 성과가 나왔다고 생각해요.
유럽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문화유산의 디지털화를 국가 전략으로 추진해 왔습니다. 이러한 디지털화는 단순한 디지털 저장을 넘어, 적절한 문화유산 데이터의 유용한 활용을 위해 여러 정보를 메타데이터로 지정해야 돼요. 그리고 유기적인 데이터 연계도 필요하죠. 다른 문화유산 데이터로의 접근이 가능하게요. 동시에 실시간 분석과 가공 기술까지 요구돼요.
그동안 문화유산 데이터는 워낙 전문성이 높고 양도 방대하다 보니, 일반인이 다루기엔 한계가 있었어요. 하지만 최근에 AI 기반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런 전문 데이터를 보다 쉽게 분석, 가공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고 있어요. 이를 바탕으로 저희는 누구나 활용 가능한 문화유산 디지털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어요. 플랫폼이 완성되면 박물관은 물론, 미술관·도서관 등 다양한 문화기관에서도 문화 데이터를 쉽게 활용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창작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현재 우리 연구팀은 ▲문화유산 디지털 데이터 품질 개선2) ▲문화유산 관계 네트워크 가시화 기술 개발3) ▲문화유산 지식기반 관계 생성을 위한 텍스트 마이닝 기술4) 등을 개발하고 있어요. 여기에는 문화유산 특화 AI 적용 기술 개발 연구와 문화유산 자산의 생성과 활용에 관한 연구 등이 포함되어 있죠.
2) 지금껏 회사마다 데이터를 만드는 방식들이 달라 퀄리티의 질이 천차만별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ETRI는 데이터로서의 무결성, 품질 우수성을 보장시킬 표준을 제작해 디지털 데이터 품질을 개선시켰다.
3) 이전에는 전시, 교육, 보존 등 데이터는 사용 방식에 따라 다르게 산재했다. 이 때문에 데이터를 찾는데 오래걸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데이터를 하나로 엮어 관계를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4) 앞선 두 기술을 사람이 감당하기엔 국가유산의 양이 방대하다. 이를 위해 AI를 활용하게 되는데, 데이터를 컴퓨터가 자동으로 분석하고, 의미 있는 관계를 찾아 서로 연결하는 기술이다.
ETRI는 국립중앙박물관과 함께 이외에도 ▲국가유산 데이터 베이스 모델링5) ▲인공지능 기반 전통 문화유산 데이터의 자동 디지털 변환 ▲초고해상도 디지털 문화유산 자산 표준화 연구 등 수많은 첨단 연구를 발전시켜 오고 있어요. 이러한 결과물 공유를 통해, 기술개발의 결과물들이 전국의 박물관과 미술관에 파급돼 인공지능 기반 디지털 전환의 시대로의 큰걸음을 같이 걸을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5) 국가유산을 기록할 때, 기록하는 방법에 따라 검색이 되기도, 되지 않기도 하는 현상을 바로잡고자 문화유산에 맞는 데이터베이스를 새롭게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다.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모든 분야에 곧바로 적용되지는 않아요. 의료나 금융처럼 데이터 기반의 산업에서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기술이 접목되어 왔고, 문화유산 분야 역시 이제 막 그 첫걸음을 내딛고 있는 단계지요. 발전되는 AI 기술이 문화유산 데이터에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도록, 많은 시도와 확산을 진행해 나갈 예정입니다.
문화유산 데이터의 AI 기반 지능형 플랫폼의 기술이 어느 정도 성숙하게 되면, 개발된 기술은 도서관, 미술관, 전시관 같은 곳에도 충분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상대적으로 자금 여력이 부족해 디지털 전환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여러 공공분야에도 ETRI가 앞장서 도움이 되는 연구를 지속하고 싶은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