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등장한 투명한 건축물
-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Vol.251 May
사람들에게 피라미드를 떠올려보라고 말한다면
백이면 백, 이집트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이집트의 유산인 사각뿔 모양의 피라미드가
프랑스 궁전 정원에 들어온다고 생각해 보라.
‘왜?’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경복궁 근정전 앞마당에 피라미드가 놓인다고 생각해 보면
당시 프랑스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된다.
1989년, 우려와 반대가 가득한 여론 속에서
루브르 박물관의 시그니처가 된 유리 피라미드가 탄생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잘 알려진 루브르. 사실 루브르는 여러 용도로 사용됐다. 최초 용도는 요새였다. 루브르 근처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 시테섬은 파리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1200년대만 해도 파리 시민 대부분은 시테섬에 모여 살았다. 당시 영국은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한 상태였고, 영국군은 파리를 시시때때로 침략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당시 왕이었던 필립 2세는 파리 시민을 보호할 목적으로 시테섬 근방에 요새를 짓게 된다. 이 요새가 바로 루브르다.
요새로 사용되던 루브르는 1380년부터 용도가 궁전으로 바뀐다. 그리고 태양왕으로 불리는 루이 14세 때 베르사유 궁전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왕실 화가들의 학원으로 쓰인다. 이후 나폴레옹이 등장하면서 루브르를 보물창고처럼 사용한다. 전쟁의 전리품으로 가져온 작품들과 유물을 이곳에 보관하게 된 것이다. 1793년에는 시민에게 공공박물관으로 개방돼 지금 박물관의 형태를 보이게 된다.
시간이 흘러 1981년, 프랑스 대통령 미테랑의 주도 아래 ‘그랑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프랑스를 문화 중심지로 만들기 위한 초대형 건축 프로젝트였다. 오르세 미술관, 라데팡스 개선문, 라빌레트 공원, 프랑스 국립도서관 등을 비롯해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가 생기게 된 이유다.
유리 피라미드는 중국계 미국인인 I.M. 페이(이오밍 페이)의 설계가 공모에 당선되면서 제작됐다. 당시 루브르를 구성하는 세 동 중 한 동을 기획재정부가 사용하고 있어 박물관 동선이 중간에 막혀있는 불편한 상황이었다. 이오밍 페이는 기획재정부를 옮기고 건물 전부를 박물관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했고, 지하에 큰 홀을 만들어 이동 동선을 편리하게 만들 것을 제안했다. 이때 지하의 공간이 답답하지 않도록 채광을 끌어올 무언가가 필요한데, 이 역할을 유리로 된 피라미드가 할 것이며, 영원을 상징하는 피라미드 조형은 프랑스의 상징인 루브르도 영원하리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어필했다. 적절한 의미와 효율적 공간의 활용에 매료된 미테랑은 이 제안을 강력하게 지지했고 1989년, 루브르 앞마당에 유리 피라미드가 탄생한다.
이오밍 페이는 유리 피라미드를 제작할 때 튼튼하면서도 완전히 투명한 유리를 제작하는 데 힘썼다. 일반적으로 유리는 철분이 섞여 두꺼워질수록 초록빛을 띤다. 이오밍 페이는 이런 미세한 초록빛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 생고뱅(Saint-Gobain) 이라는 프랑스 유리 제조업체에 의뢰한다. 생고뱅은 2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철분을 완벽히 제거한 다이아몬드 글라스를 만들었다. 이 유리는 투명한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자동차 앞 유리처럼 적층 구조다. 충격으로 깨지더라도 내부 플라스틱층이 파편을 붙잡아 흩어지지 않도록 튼튼하게 설계됐다.
21.5mm(0.8인치) 두께인 유리는 마름모 모양으로 675개, 삼각형 모양으로 118개가 제작됐다. 이 유리들은 6,000개의 가느다란 은색 철제 부재로 고정돼 있으며, 이 부재 또한 경관을 해치지 않게 제작됐다. 실제로 루브르 내부에 들어가 유리 피라미드를 올려다보면 철제가 얇아서 외관을 보는데 거슬리지 않는다. 200톤에 달하는 유리 피라미드는 현재까지 파손된 적 없이 튼튼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유리 피라미드는 서서히 파리 시민과 여행객의 삶에 루브르의 시그니처로 자리 잡는다. 2016년도와 2019년도에는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프랑스 출신 사진작가이자 거리 예술가인 JR과 협업해 유리 피라미드를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2016년도에는 피라미드 조형물 위에 루브르 박물관의 옛 외관 사진으로 덮어 피라미드가 사라져 보이는 작품을 선보였다. 2019년도에는 피라미드 주변 광장 바닥에 100m 길이가 되는 2,000여 장의 사진 조각을 붙여 지하로 끝없이 이어지는 듯 보이는 작품을 완성한다. 유리 피라미드가 박물관 입구 역할을 뛰어넘어 시민들에게 문화적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이 된 것이다.
이 작품을 보지 못했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유리 피라미드의 매력적인 요소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우선 유리 피라미드를 둘러싸고 있는 수(水)공간을 살펴보길 권한다. 수공간을 담아내는 돌이 커다란 통석을 사용해 미니멀하게 디자인돼 있는데, 이 디테일을 구경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또 하나는 피라미드를 통해 들어오는 나선형 계단 중앙에 배치된 엘리베이터다. 노약자나 장애인을 위한 기기인데, 빈틈없이 공간을 활용한 디자인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하로 들어가 서쪽으로 가면 역피라미드 모양의 창이 설치돼 있다. 이곳에서도 채광이 들어와 지하가 환하게 유지된다. 이 역피라미드 또한 유리 피라미드의 감상 포인트가 돼줄 것이다. 사람들의 우려와 반대 속에서 지어진 유리 피라미드 프로젝트. 하지만 루브르 공간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세기의 프로젝트였음을 느낀다. 단순한 디자인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향력을 생각하며, 유리 피라미드를 감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