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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Vol.217

빛을 이용한 카메라로
분자 세상을 들여다보다

1,000조 분의 1초라는 펨토초.
이 펨토초라는 순간을 빛으로 포착하는 기술이 있다.
인류는 이 기술을 이용하여 분자의 성질과 화학적 변화를 관찰하며
그동안 알 수 없었던 물질의 세계를 알아가고 있다.

빛의 산란으로 분자를 분석하다

태양 빛은 각각 다른 색을 띄는 다양한 파장의 광선으로 혼합되어 있다. 이것이 프리즘에 의해 굴절되면 각각의 광선으로 나뉘어 무지개로 보이는 것이다 (분광기 원리).

세상의 모든 물체는 물질의 성질을 가진 가장 작은 입자인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 인류는 지금까지 물질의 내부를 파헤치며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고, 그동안 풀 수 없었던 난제를 풀어왔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알고 싶은 것을 두 눈으로 들여다본다고 분자와 원자 단위까지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은 그 내부를 어떻게 볼 수 있었을까?

그들은 빛을 이용하여 분자를 관찰했다. 물질과 빛은 여러 종류의 상호작용을 한다. 과학자들은 물질 내 분자가 특정 파장의 빛을 흡수하거나, 그 파장을 흡수한 뒤 발광하는 등의 상호작용 현상을 과학 기술에 이용했다. 이렇게 빛을 이용한 물질 분석법 중에는 ‘산란’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산란이란 빛(광자)이 직진하다가 자신의 파장보다 작은 분자와 부딪힐 때 경로가 바뀌며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는 현상이다. 이때 빛이 가진 에너지에 변화가 생기기도 하며, 에너지 변화가 있고 없고에 따라 산란의 종류도 나뉜다. 에너지 변화가 없는 것을 ‘탄성 산란’, 에너지 변화가 있는 것을 ‘비탄성 산란’이라고 한다.

이 산란들은 또다시 여러 종류로 나뉘지만, 최근 과학 기술 분야에서는 ‘비탄성 산란’에 주목하고 있다. 비탄성 산란은 이를 처음 발견한 학자의 이름 ‘라만’을 따서 라만 산란으로 불린다. 라만 산란은 산란 전후로 광자의 에너지 변화 때문에 빛의 색이 변한다. 물질 내 고유분자에 따라 라만 산란을 일으키는 정도가 달라 산란으로 인한 색상 변화를 파악하면, 물질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라만 산란의 성분(라만 스펙트럼)을 분석하면 물질의 화학적 변화 또한 관찰할 수 있어 이전에는 찾기 어려웠던 물질의 속성도 발굴할 수 있다.

결맞음 펨토초 빛으로 포착한 분자의 변화

이러한 라만 산란을 이용해 분자를 들여다보는 방법 중, 세계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킨 연구가 있다. 1999년 아흐메드 즈웨일 교수는 이 라만 산란을 이용해서 요오드화나트륨이 요오드와 나트륨으로 나뉘는 순간을 포착했다. 이는 단순 라만 산란만을 이용한 것이 아닌, 펨토초 레이저와 결합된 기술로써 이뤄낸 결과다.

펨토초란 1,000조분의 1초를 뜻한다. 눈 깜짝할 새가 0.4초이고, 아주 짧은 순간인 ‘찰나’는 0.013초다. 1초에 29만 9292.458 km를 간다는 그 빠르다는 빛조차도 1펨토초에는 0.3 마이크로미터만 갈 수 있다. 펨토초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아주 짧은 순간인 것이다. 그런데 분자와 원자는 펨토초 단위로 흘러간다. 생체 내 세포의 상태 변화, 물질의 화학적 변화 등 모두 펨토초 단위로 이루어지니, 펨토초 단위의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기술인 분자 카메라로만 분자 활동 포착이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즈웨일 교수가 실험에 펨토초 레이저를 사용한 이유다. 10~50펨토초 동안 꺼졌다가 켜지는 큰 진폭을 내는 전압이나 전류의 파동(펄스)으로 구성된 펨토초 레이저로 물질에 빛을 쏘면, 펨토초 동안 빛이 산란된다. 여기서 나오는 정보를 각각 분석하면 물질이 변화하는 순간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이 펄스를 연사하면 그 찰나의 순간에 분자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영상으로 담아낼 수도 있다. 이를 펨토초 레이저 기반 실시간 라만 분자 진동 영상기술(CARS, Coherent Anti-stokes Raman Scattering)라고 한다. 펨토초 단위로 빛을 낼 수 있는 서로 다른 레이저 두 개를 동시에 이용해 각 빛을 관찰하고자 하는 표적에 쏘고, 여기서 일어나는 분자 진동에 따른 빛 주파수 차이를 영상화하는 기술이다.

CARS의 미래

이 영상은 앞으로 어디에 쓰이게 될까? 이 영상 기술이 기술을 거듭해 고도화되고 보편화된다면, 신체에 직접 사용할 수 있어 치료가 어려웠던 암 등의 질병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암이란 기존의 정상적인 세포가 어떠한 요인에 의해서 비정상적인 세포로 변한 것이다. 암이 발병되기 전부터 암 발생 전조증상을 파악하고 예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 당장의 기술로는 어렵다. 현재의 암 진단 방식은, 발병되고 난 후 세포 조직을 채취해 염색을 한 뒤 세포 속 문제를 광학 현미경을 이용해 의사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여 진단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펨토초 레이저를 이용한 현미경, 영상 기술 등을 이용하면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발견되는 그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 그 연구를 통해 정상세포가 암으로 변화되는 것을 사전에 막는 방법들이 나올 것이다.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며 CARS를 비롯한 각종 펨토 과학들이 정교해지고 보편화되면, 그동안 인류가 풀지 못했던 각종 난제들이 무리 없이 해결될 것이다.

모두가 기대하고 있는 이 미래를 ETRI 연구진이 앞당기기도 했다. 그동안 CARS 현미경에 쓰이는 펨토초 레이저는 다이오드 펌프 솔리드 스테이트기반의 레이저(DPSSL, Diode-Pumped Solid-State Laser)로 제작하였다. 이는 고가의 장비인데다 기존 CARS 현미경에는 해당 레이저가 두 대나 필요해 가격이 15억 원대로 비쌌고, 크기 또한 책상 두 배 정도로 크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ETRI 연구진은 반도체 발광소자를 이용해 보다 저렴하게 펨토초 레이저를 구현했다. 또한 CARS 기술을 레이저 한 대로만 해결할 수 있도록 개발해 기존 가격에 10%에 해당하는 가격으로 상용화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기존 외산 기술보다 4배 더 높은 해상도, 4배 더 빠른 영상 해석이 가능해 실시간으로 영상을 볼 수 있고, 끊김 없는 영상 분석도 가능해졌다.

분자의 움직임을 실시간 포착하는 이 기술과, 이 기술들을 고도화시킨 ETRI 연구진의 행보로 사회 곳곳의 문제들을 풀어낼 날들이 가까워졌다. 하루빨리 이 기술이 보편화되어 그날을 맞이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