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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85 · May 26 · 2017 · Korean

Insight Trip  ______  책과 인쇄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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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쇄의 역사 속을 거닐며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예전보다 책을 쉽게 접한다. 하루에도 수많은 종이책과 잡지 등 인쇄물이 쏟아진다. 몇 천 권의 책을 태블릿 PC에 소장할 수 있는 전자책도 발행되고 있다. 지금처럼 인쇄술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어땠을까? 춘천에 자리한 책과 인쇄 박물관은 우리의 책과 인쇄문화의 역사를 전시한 공간이다. 책을 쉽게 접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한 권의 책이 얼마나 소중하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의 책과 인쇄 문화가 전하는 매력 속으로 풍덩 빠져보자.

책은 저자와 인쇄공의 영혼이 담긴 예술이다

우리나라 책과 인쇄문화는 1,300여 년 전 신라 시대 사경(寫經)으로부터 출발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목판 인쇄술을 이용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탄생시켰다.
금속활자를 발명해 인쇄한 「직지」는 서양보다 200년이나 앞섰다.

책과 인쇄 박물관은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책과 인쇄 문화를 소개하고, 활판 인쇄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곳이다.
책들이 책장에 꽂혀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건물 안에 들어서면 커다란 메시지가 눈에 띈다.

“우리가 보는 책들 한 권 한 권은 모두 영혼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을 쓴 사람의 영혼과 그것을 만든 인쇄공의 영혼과 그것을 읽고 꿈꿔왔던 사람들의 영혼이...”

이곳을 세운 전용태 관장의 책과 인쇄에 대한 소신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용태 관장은 30년 동안 신문사와 충무로에서 인쇄 관련 일을 했다.
은퇴 후 북카페를 열기 위해 고서와 근·현대 문학 서적을 모으다 책과 인쇄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박물관을 건립했다.

1층 인쇄 전시실로 들어가면, 오래전 인쇄 공소를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1884년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근대식 민간 인쇄소 [광인사인쇄공소]를 재현해 놓은 곳이다.
이곳에서는 실제로 납 활자를 만들기도 하고, 활판 인쇄 과정을 시연하기도 한다.
잉크 냄새와 납 녹이는 냄새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배움의 향기를 전하고, 기성세대에게 지난 시간을 추억하게 만든다.
납 활자를 손 위에 올려 보니 종이에 인쇄되어 있던 활자들이 금방이라도 모여 글자를 만들 것처럼 생동감 있다.

활판 인쇄는 대략 100년 전쯤 시작되어 활판 인쇄기계가 만들어지면서 인쇄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에는 종이책을 보기 쉽지 않았다. 활판 인쇄로 책을 만들기 위해서 조각기로 신주에 자모를 조각하여 완성하고, 납 물을 녹여 활자를 주조한다.
만들어진 납 활자를 찾기 쉽게 배열하는 문선의 과정을 거쳐, 활자를 이용하여 원고에 맞게 판을 짜는 조판 작업을 진행한다.
이후, 인쇄와 제본의 과정을 거쳐야만 책 한 권을 완성할 수 있었다.

‘타닥- 타닥-’ 오래된 타자기와 고서가 전하는 매력

1층 인쇄 전시실 반대쪽에는 에디슨이 발명한 등사기와 복사기가 전시되어 있다.
등사기란 같은 글씨나 그림 등을 많이 박아내는 간편한 인쇄기다. 오래 전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시험지를 만들 때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이곳을 찾은 선생님들은 등사기를 보고 옛 추억을 상기하기도 한다.

한 편에는 오프셋 인쇄의 제작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오프셋 인쇄 방식은 활판 인쇄처럼 조판물을 종이에 직접 인쇄하는 것이 아니라,
고무로 된 불랑켓이라고 하는 매개물을 통해 전사 되었다가 다시 종이에 인쇄하는 간접 방식이다.
세월의 손때가 묻은 인쇄기기를 뒤로하고 2층 전시실로 향했다.

2~3층 책 전시실은 책과 인쇄 박물관 관장이 그동안 모은 고서와 근·현대 문학 서적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2층에 위치한 고서 전시실에는 「훈민정음」을 비롯해 조선시대 아이들이 서당에서 배웠던 「천자문」, 「소학」등과 선비들이 읽었던 여러 고서가 전시되어 있다.
책을 만들기 이전에 꼭 필요한 한글의 중요성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다.
의학서적으로는 세계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동의보감」 25권 전질과 고대소설도 오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채 원본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또한, 벽면 가득히 납 활자가 전시되어 있고, 오래된 타자기가 그 앞에 자리하고 있다.
작은 PC 모니터가 달린 자판부터 오래된 타자기까지 인쇄의 역사를 한 눈에 보여준다.
오래된 타자기들이 금방이라도 ‘타닥- 타닥-’ 타자기 고유의 고전적인 리듬을 타며 움직일 것 같다.

책 한 권의 소중함

3층 책 전시실은 근·현대 문학 서적과 타자기, 운크라 교과서 등이 전시되어 있다.
오랜 시간 책을 수집하며 아껴왔을 관장의 노력이 돋보인다.
특히 이광수, 최남선, 김소월, 김유정 등 우리나라 근·현대 문학을 이끌어 온 작가들의 혼이 깃들어 있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시집으로는 현재 극소수의 수량만 전해지고 있는 김소월의 「진달래 꽃」 초간본과 한용운의 「님의 침묵」,
문학 책으로는 최초의 근대 소설인 이광수의 「무정」, 김유정의 「동백꽃」등이 전시 되어, 오래 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그때 그 시절’ 촌스러운 매력을 뽐내는 대중 잡지도 볼 수 있다.
젊은 시절 선데이 서울을 읽으며 청춘을 보냈을 기성세대들에게 추억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우리나라는 1951년 12월부터 1953년까지 운크라에서 원조 받은 종이로 교과서를 만들었다.
당시는 교과서뿐만 아니라 모든 자원이 부족했는데,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한 권씩 나눠주기도 힘들 정도였다.
결국 당시 문교부 장관이던 백낙준 박사가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유네스코와 운크라에서 종이를 보내주어 교과서를 만들 수 있었다.
지금은 모든 학생이 교과서를 가지고 있고, 교육 자료도 풍부하다. 교과서가 부족했던 예전의 학생들을 생각하며, 책 한 권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

긴 세월 동안 세계에서 가장 앞선 인쇄문화를 가졌던 대한민국.
우리의 책과 인쇄문화의 중요성을 배우고, 책 한 권의 소중함을 알 수 있는 시간.
책 한 권에도 작가와 인쇄공, 책을 읽는 이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전용태 관장의 마음처럼,
책과 인쇄 박물관에는 이곳을 찾는 이의 마음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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