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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vol.30 2015.01.09
스페이스
자연과 예술의 물아일체

자연을 모방한 예술, 예술이 된 자연.
이 둘의 관계를 한 마디로 정의 할 순 없지만, 분명한 건 자연과 예술은 치유의 힘을 갖고 있다는 것.
하슬라 아트월드를 담은 바다와 하늘이 깃털 같은 감정을 다독이고, 한 점의 그림과 조각상은 뜻밖의 깊은 울림을 준다.

탁 트인 동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해안 절벽 위에, 어느 한 예술가의 신비로운 정원 같은 곳이 숨어있다.
자연과 사람, 예술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복합문화예술휴식처 하슬라 아트월드를 찾았다.

바다 옆 미술관

정동진에서 북쪽으로 5분정도 차를 타고 달리면 동해에서 해가 가장 먼저 밝아 온다는 등명해변이다.
이 바다와 함께 눈에 들어오는 레고 블록 하나가 강릉의 또 다른 명물 하슬라 아트월드다.
모던한 디자인에 산뜻한 원색을 한 독특한 외관부터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하늘과 바다, 산에 둘러싸여 최고의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하슬라 아트월드.
조각가이자 교수인 최옥영, 박신정 부부가 2003년에 개관한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하슬라는 고구려 신라시대부터 불리던 강릉의 옛 이름이다.

아트월드를 향해 언덕을 올라 숨이 조금 찰 때 쯤, 푸른 바다와 대비되는 빨간 벽돌의 미술관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다양한 현대 미술 작품과 설치 예술 작품들이 가득하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미술관 설립자인 강릉원주대학교 미술대학 최옥영 교수의 ‘우주’ 라는 작품이다.
자작나무 합판을 무수히 이어 붙여나가는 시간의 과정과 우주만물을 담는 그릇을 형상화함으로써 시공의 결합을 조형화하였다고 한다.

건너편 전시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이번 달부터 새롭게 선보이는 팝콘전(展)이 창문 너머 바다와 함께 눈에 들어왔다.
팝 요소의 회화장르와 설치를 아울러 마치 팝 아티스트의 콘서트 형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정혜경, 김동현, 조윤진, 임정아, 찬찬민, 루디 푼조 등 젊은 예술가들 6명의 독창적인 감각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정혜경 작가의 ‘세발 자전거에게 길을 묻다’이다.
기타로 만든 세발 자전거 작품은 보기만 해도 타고 달릴 때의 희열과 재미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늘 아래 예술정원

1시간 남짓 미술관을 둘러보고 파도 소리를 따라 계단을 오르자 바다 카페가 나온다.
투명한 청색 물결과 철썩이는 파도 소리, 싱그러운 바다 내음은 눈, 코, 귀까지 정화시킨다.
수평선 끝까지 시야를 멀리 넓게 두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오른쪽으로 눈을 돌렸는데, 한 남자가 허공에 떠있다.
최옥영 교수의 ‘포세이돈의 귀환’이라는 작품이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황급히 바다를 뛰쳐나오는 이 조각상은 문명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위태로운 현대인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카페를 나와 200여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3만 3천여 평의 조각공원으로 향했다.
하늘과 맞닿은 이 정원은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비탈면과 산의 높이를 그대로 이용하고,
자연미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자연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각도로 길을 내 꾸며진 곳이다.
정원 초입에 울창한 활엽수림과 다양한 조각들이 어우러진 2km의 산책로 성성활엽길이 있다.
300여 종의 야생화, 식물나무가 분포되어 있는 길로 작가의 드로잉과 대지 예술 작품들이 길목마다 놓여있어서 보물찾기를 하듯 감상하며 올라갔다.
시간의 광장, 소나무 정원, 놀이 정원을 지나 하늘전망대에 올랐다.
당장이라도 페달을 구르면 하늘을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자전거는 ‘그림자 자전거’ 라는 작품이다.
머리끝에 하늘이, 발끝에 바다가 있다.
이 기막힌 풍광 앞에서 깊게 심호흡을 하자 티끌 같은 상념도 다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예술 작품 같은 전망을 두고 내려와야 하는 아쉬움을 내리막길에서 만난 바다정원으로 달랬다.
바다정원을 걷는 내내 이대로 걷다보면 바다 속으로 걸어들어 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한 편, 정원 곳곳에는 빌런도르프 비너스 상들이 놓여있다.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비너스 상에 빗대어 바다의 생산성과 풍요로움을 이야기하기 위해 설치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예술 산책을 마치고, 마지막 장소로 이동했다.

숲 속의 피노키오·마리오네트 방

터널을 지나 넓은 지하 밀실로 들어가니 피노키오와 제페토 할아버지 형상의 목각 모빌들이 가득하다.
이곳은 피노키오를 모티브로 한 작가들의 작품과 이탈리아에서 구입한 피노키오 인형들이 전시된 피노키오 방이다.
한 켠에는 1940년, 디즈니사에서 제작한 ‘피노키오’가 상영되고 있었다.
문턱을 건너서 마리오네트 방으로 가보니 그 동안 유럽에서 수집한 마리오네트와 퍼핏들을 전시 미술로 풀어놓은 공간이 펼쳐졌다.
줄인형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인 마리오네트는 꼭두각시 중 인간의 움직임을 가장 가깝게 표현해내고 있으며
고대 이집트의 무덤, 그리스의 문헌에서 발견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베니스 사람들이 인형극 소재로 성모마리아 상을 사용하면서 붙여진 마리오네트가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게 된 것은 르네상스 이후부터라고 한다.
색다른 비밀의 공간을 둘러보니, 정성들여 장식한 어느 수집가의 방을 거닐며 주인의 애장품을 조심스레 감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자연과 예술의 또 한 가지 공통점은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하슬라 아트월드에 머무는 동안, 어느 곳에 시선을 두어도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청량한 하늘, 드높은 산이 시야에 걸렸다.
이런 자연 환경 속에서 예술적 상상력을 깨우는 작품들을 감상하는 일은 더할 나위 없는 휴식이다.
그리고 이 휴식이 창조적인 생각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아이디어가 꽉 막혀 감각적인 힐링이 필요하다면, 강릉 하슬라 아트월드로 예술 여행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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