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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06 201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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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통 없이 혁신 없지만 흔들리지 말고 꿋꿋하게!

안녕하세요? ㈜옵토스타 대표 심재기입니다.

저는 1989년 ETRI 구성원이 되어 기초기술연구부에서 GaAs 반도체 레이저를 연구하였고, 1993년에는 통신부품연구실로 옮겨 광통신 회로소자(PLC)를 개발하였으며, 동 기술을 통해 2002년 창업하였습니다. 업력 13년차인 제게서 ETRI를 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선후배 그리고 동료들의 격려와 도움에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대한민국 ICT 발전의 중심에 ETRI가 있다면, 그 외부 환경에 ETRI 출신 기업들이 또 한 축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ETRI 출신 벤처기업인 중 한 사람으로서, 화려하지는 않지만 이런 회사도 있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평범한 벤처기업의 생존을 위한 변신과 그 과정의 우여곡절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아울러 저도 제 자신을 반성하고 ETRI도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혹시 체육 특기생?

ETRI 재직 당시 저는 연구보다 운동으로 더 유명했습니다. 입소 3일째 되는 날, 정장 차림으로 축구동호회에 가입했을 정도였죠. 매년 열리는 연구소 체육대회에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경기에 참여했습니다. 축구, 농구, 씨름 등 거의 모든 종목에서 우승을 해봤는데 딱 하나, 마라톤은 심폐기능이 탁월하지 못한 탓에 출전조차 해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운동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많았습니다. 처음 근무부서인 기초기술연구부의 부장님께서 제가 매일 점심시간만 되면 운동복 가방을 메고 나가니까 한번은 “여기가 무슨 헬스클럽인줄 알아?”하시며 호통 치셨던 일이 생각나는군요. 그 이후로는 운동복 가방을 개인사물함에 넣어놓고 다녔답니다.^^
하지만 축구보다도 연구를 더 열심히 했습니다. 처음 제가 설계해서 제작한 초고진공 장비로 GaAs 반도체 소자를 만들었을 때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면 되는구나!'라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 후 개발 부서로 자리를 옮겨 실리콘 기판에 유리막을 형성한 광회로소자를 개발했고, 이때도 대부분의 공정장비를 직접 설계 제작했습니다. 이 기술을 기업에 이전했을 때 가장 큰 보람과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광회로소자 개발 당시 필수 공정 중 실리콘 기판 위의 유리막을 10㎛정도 식각하는 공정이 있었는데, 당시 해외에도 상용장비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공정은 장비의존도가 높아 신중한 장비 선택이 필요한데, 이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동일한 샘플을 만들어 영국, 미국, 일본 등 여러 회사에 보내 장비 성능을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샘플은 만족스럽지 않아 실망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미국의 PlasmaTherm사의 결과에서 높은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고, 2주일간 직접 현지에 가서 10㎛ 식각에 성공, 결국 그 장비를 구입하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사실 저 혼자서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정말 보람으로 여기는 것은 큰 업적을 이룬 것보다도 늘 힘이 되어주고 함께 해준 좋은 동료와 선배들이 곁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나를 단련시켜준 ETRI

ETRI는 제 인생의 반을 보낸 곳이자, 정신적인 뿌리가 있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지방대를 나와 처음 입소했을 때 명문대 출신이나 유치 과학자들과 함께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었고, 그래서 누구보다 더 열심히 했습니다. 학력이 아닌 노력과 실력으로 보여주고 싶었고, 연구나 연구 외의 일에도 적극적으로 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선배들로부터 혹독한 훈계도 듣고,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다보니 ETRI에 근무하면서 내공이 많이 쌓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연구결과에 대한 강한 의욕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것 같아 마음에 걸립니다. 한 번은 새벽까지 실험을 하다가 장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경기도 안산에 있는 업체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꼭두새벽에 대전까지 내려오게 한 일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갑’이 아닌 ‘을’의 입장이 되어 곤란한 경우를 겪곤 합니다. 업력 13년차에 접어드니 여러 가지 일들로 인연을 맺은 사람들, 그리고 파트너기업이 얼마나 소중하고 배려해야 하는 존재인지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어려운 기업환경 속에서도 ETRI 출신이라는 자부심과 사업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은 ETRI 동료들이 없었다면 아마 버티지 못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 또한 ETRI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회사를 운영해 나가고자 합니다.

창업, 난관들 그리고 깨달음

앞서 언급한 유리 식각공정이 창업을 결심한 가장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PlasmaTherm사에서 2주간의 공정으로 성공한 레시피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수차례 요청을 해왔고, 저는 큰 고민 없이 허락을 했죠. 이후 그 회사는 유리 식각장비를 판매하여 약 3조원의 매출을 올렸고, 이 일을 계기로 기술사업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제가 개발한 기술이 사회에 필요하고 사업적 가능성이 있다면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고, 2002년 3월 광통신 시장 진출을 위한 광회로 소자 전문기업 설립계획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2003년 첫 제품인 32채널 광분배기를 LG전자에 납품했을 때는, ‘사업이 생각보다 쉽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무렵 광통신 시장 환경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판로가 막혀버렸습니다. 그 후 새로운 제품을 발굴하고자 여러 가지 시도를 하였고, 이때 발모레이저, 한방레이저치료기 등을 개발했습니다. 그러나 사업화까지는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발모효과가 있는 레이저는 존재하지 않았고, 동의대 한의학과와 공동 개발한 한방레이저치료기는 시판을 앞두고 한의원의 주사 및 레이저 사용에 대한 의료계의 논란이 불거지면서 출시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던 2005년에 ETRI 입소동기가 “이런 거 한번 해보는 거 어때?”라며 제안한 것이 ‘테라스토’라는 스토리지 시스템입니다. 사용이 쉽도록 인터페이스를 간단하게 만든 것이 특징으로, ETRI 출신 대학교수가 기획하고 ETRI 현직 연구원이 기술을 지원하여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현재 출연(연)을 비록한 1,200개 기관에서 테라스토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 중에는 코스닥기업 및 많은 중소기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2년 테라스토 서비스에 주력하던 즈음에 '뭔가 다른 걸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고속, 고성능에 경제성까지 갖춘 하이브리드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ETRI로부터 고속 스토리지 엔진기술을 이전받아 공동연구를 통하여 1.8Gbps의 처리속도로 3D, UHD 동영상 72Gb를 40초에 다운로드할 수 있는 상용제품을 개발했습니다. 이 제품은 빅데이터, 클라우드, 가상화 등에 서버나 스토리지로 적용되어 판매되고 있습니다. 1Gbps급 고성능 PC와 이런 기기들을 결합해 주는 10Gbps 네트워크 솔루션도 개발해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또한 조금은 성격이 다르지만 소변으로 전립선염, 신장염, 방광염 등 50가지 질병을 예비진단하는 단말기를 ETRI 용역으로 개발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임신진단기와 배란진단기로 출발한 것이 그밖에 다양한 인체정보까지 획득할 수 있는 단말기로 발전하였고, 이 제품은 제약회사와 계약이 성사되어 현재 상용화 모델이 을지병원과 국립재활원 등에서 임상시험 중에 있습니다.
최근 준비하는 일은 ‘LED 시각화 기반 데이터 센터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모든 서버의 전원, 디스크, 네트워크단자 등을 LED로 감시하는 기술을 세계최초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창업해서 지금까지 사업을 하며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팔릴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사줄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줄 제품이 될 때까지 기획과 개발, 검증 등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며, (주)옵토스타는 지금 이러한 과정을 경험하고 한 단계 더 위로 도약하려는 기업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이끌어가는 회사

직설적으로 말해, 상당수 중소기업의 애환은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돈은 올 때가 되어야 따라오는 것이지, 쫓아간다고 해서 잡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개발한 기술이 다른 사람에게 돈을 벌게 해줄 수도 있고, 반대로 다른 사람이 개발한 기술 덕에 내가 돈을 벌수도 있습니다.
엔지니어 출신 기업인들은 대체로 돈을 바라보고 사업을 하기 보다는 기술을 개발해서 제품화하는 것에 대해 더 큰 만족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자기 합리화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순수성이 ETRI 동문기업들의 기술수준이 높은 이유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지난 13년을 되돌아보면 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되는 경우보다 그렇치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계획한 사업을 열심히 했지만 소득이 없었던 경우도 있었고, 반대로 엉뚱하고 우연한 기회에 사업이 풀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창업당시 IBM, 소니, 노키아 등 거대했던 기업들이 현재는 주력사업을 내려놓고 서비스 솔루션, 스마트폰, 네트워크 서비스 등을 통해 재기를 노리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과거에는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사업의 목표였지만 현재는 ‘롱런’하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1935년에는 기업의 평균 수명이 90년이던 것이 최근에는 15년으로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정서에 따라 빠르게 변하는 ICT 기업환경에 적절히 대응함으로써 롱런할 수 있다면 그 이상의 바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현재 추진 중인 몇 가지 사업모델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장에서 당당하게 맞서 승리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혁신은 고통을 수반하는 것

ETRI에 막 입소해 기숙사에서 생활했을 때가 생각이 나는군요. 저녁에는 텅텅 비어있다가 새벽 2~3시가 되면 샤워장이고 어디고 그 시간에 퇴근해 들어온 직원들로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그 시절 매일 야근을 해가며 고생했던 선배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ETRI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TRI가 그동안의 성과에만 머무르지 않고 미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뼈아픈 자구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혁신이란 거저 되는 것이 아니라 뼈아픈 고통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후배들이 먼저 나서서 선배들이 해왔던 역할을 감당해 나가야 할 것 입니다. TDX, 반도체, CDMA, 와이브로까지 이어져온 ICT 경쟁력을 젊은 연구원들이 앞장서서 이어나가주길 바랍니다.
기업이 감당해야 할 역할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서 주제넘게 말씀 드렸습니다만, 이런 부분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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