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정보화의 바람 속에서 컴퓨터·반도체·통신 기술의 융합이 강조되었고, 전자와 통신을 결합한 전문 연구기관의 필요성이 커졌다. 1985년 3월 26일 한국전자기술연구소(KIET)와 한국전기통신연구소(KETRI)의 통합으로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가 출범하면서, ‘전자+통신’ 융합 연구체계가 본격 가동되었다.
통합 이후 ETRI는 기간망 분야의 대형 연구개발을 지속하는 한편, 컴퓨팅·SW·반도체·단말 등 다양한 축을 강화해 ‘국가 ICT 종합 연구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 갔다. 또한 1996년부터는 KIST 부설 시스템공학연구소(SERI)의 소속 변경과 흡수·통합(1998년)을 통해 시스템·SW 역량을 제도적으로 강화했다.
이 시기의 상징적 성과는 TDX 상용화의 확산이다. TDX는 교환기 개발·생산국이었던 일부 선진국의 기술 장벽을 넘어, 한국이 디지털 전화망을 독자 구축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개발 단계는 TDX-1X, TDX-1, TDX-1B, TDX-10 등으로 이어지며 용량과 기능이 고도화되었고, 각 단계는 실개통과 망 적용을 통해 검증되었다.
1982년 7월 26일, 3차 시험기(TDX-1X)는 362회선 가입자를 대상으로 현장 시험 운용을 개시했다.
TDX는 기술적 성공을 넘어 경제적·산업적 성과로도 평가된다. 생산유발, 수입 대체, 기술료 절감, 신규 산업 창출 등 파급효과가 보고되었고, 일부 기간의 국내 생산유발 효과가 수조 원 규모로 추정되기도 했다. 더 중요한 점은 TDX 개발 과정에서 축적된 ‘대형 시스템 설계·시험·운용관리’ 역량이 이동통신·광통신·SW 플랫폼 개발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전화 보급이 확대되면서 통신 서비스는 단순 음성 통화에서 부가서비스로 확장되었다. 시간대별 수신 위치 변경, 융통성 있는 통화료 부과, 음성 기반 다이얼링 등 새로운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지능망(Intelligent Network) 개념이 등장했고, ETRI는 KT 등과 함께 SCP·SMS, STP, SSP, 신호망 관리 시스템(SIGNOS) 등의 개발을 추진했다. 이는 ‘서비스 생성 환경’을 통해 통신서비스를 빠르게 기획·배포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다.
또한 1990년대 후반에는 PC통신 중심에서 개방형 인터넷으로 이동하는 전환기에 대응해, 인터넷 가입자 정합, 프로토콜 처리, 운용관리 등 접속 시스템 기술이 개발·이전되었다. 이 흐름은 2000년대 광대역 인터넷 대중화와 서비스 플랫폼 확산으로 이어진다.
디지털 이동통신은 국가 ICT 경쟁력의 핵심 영역으로 부상했다. ETRI는 기술 도입이 쉽지 않던 상황에서 CDMA의 성장 가능성을 검토하고 퀄컴과의 공동 연구를 결정하는 등 ‘선택과 집중’ 전략을 실행했다. 1996년 CDMA 상용화 성공은 한국이 단기간에 이동통신 선도국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핵심 모뎀 기술의 해외 의존은 다음 과제로 남았다.
이에 ETRI는 3세대(IMT-2000) 기술개발 과정에서 CDMA2000 시스템의 독자 모뎀 설계·구현·상용화에 집중하고, OCQPSK, AISMA 등 핵심 기술을 확보해 지식재산권을 축적했다. ‘모뎀 자립’ 노력은 2000년대 이후 3G/4G 표준 경쟁에서 중요한 기반으로 작동한다.
기간망과 이동통신이 ‘연결’을 확장했다면, 컴퓨팅·SW는 ‘활용’을 확장했다. ETRI는 주전산기(TICOM 계열) 개발을 통해 고성능 컴퓨팅 기술을 축적했고, DBMS ‘바다’ 시리즈를 통해 관계형 DBMS에서 객체지향·멀티미디어·인터넷 환경으로 기술 범위를 넓혀 갔다. 바다 DBMS는 기술이전과 창업으로 연결되며 국내 DB 산업 생태계 형성에 기여했다.
우리나라가 1M DRAM의 시제품을 개발하고 있던 1980년대 중반, 반도체 선진국인 미국이나 일본은 이미 4M DRAM의 실험 시제품을 개발하고 있었다. 1985년 전 세계 반도체 업계 1위는 일본 NEC였고, 당시 세계 반도체 순위 10위 안에 드는 일본 업체가 무려 5개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 정부는 반도체 개발을 앞당기기 위해 1986년 특정 연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초고집적 반도체 기술 공동개발 사업’ 계획을 수립하였다. 1989년 3월까지 0.8㎛ 선폭의 4M DRAM을 개발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단계별 목표가 설정됐다. 그리고 1986년 8월, 과학기술처, 체신부, 상공부 3개 부처가 공동명의로 작성한 ‘초고집적 반도체 기술 공동개발안’이 통과됨으로써 4M DRAM의 공동개발이 정부 방침으로 최종 확정됐다. ETRI가 연구개발을 총괄하고 삼성반도체통신·금성반도체·현대전자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4M DRAM 공동개발은 ETRI가 연구개발의 총괄관리와 설계, 생산, 기본기술 개발을 지원하며, 참여기업들은 설계, 생산과 기본기술 개발을 담당하고 기업의 기술능력에 따라 독자개발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리고 연구원들의 사활을 건 노력으로 1989년 2월, 4M DRAM 개발에 성공했다.
한편, 공동개발팀은 4M DRAM의 개발이 완료되기 전인 1988년부터 1989년까지 선진국들이 이미 개발을 추진하고 있던 16M DRAM과 64M DRAM의 개발 타당성을 검토했다. 그리고 4M DRAM 개발 종료 시점에서 곧바로 착수해야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차세대 반도체 기술 공동개발을 추진했다.
4M DRAM 개발과 마찬가지로 ETRI가 공동개발을 총괄하고 4M DRAM에 참여했던 3개 기업과 금호석유화학을 비롯한 6개 업체, 2개의 정부출연연구기관,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19개 대학 등이 참여했다. 공동개발은 계획에 따라 차질 없이 진행되어 1991년 3월, 시제품에 대한 검증과 평가까지 마침으로써 우리나라는 일본과 거의 같은 시기에 16M DRAM 개발에 성공하고 당당히 반도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게 됐다. 그리고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RAM을 개발함으로써 드디어 일본을 따라잡았다. 이후 1994년, 256M DRAM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우리나라가 현재까지 세계 메모리 반도체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고수하는 발판이 됐다.
1986~1999년은 ‘상용화 경험’과 ‘산업 생태계’가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기였다. TDX의 성공, CDMA 상용화, DBMS·SW 기반 강화, DRAM 개발은 2000년대의 first mover형 혁신(3G/4G, WiBro, DMB, 디지털 방송)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연결고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