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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지 않는 건물의 비밀
- 피사의 사탑

Vol.249 March

이탈리아의 서쪽 토스카나주의 피사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랜드마크가 있다.
이를 보기 위해 피사 여행은 피렌체를 방문한 여행객들의
빠지지 않는 당일치기 근교 여행코스로 자리 잡았다.
바로 중세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피사의 사탑이다.
초록빛 짙게 깔린 잔디 위로 피사 대성당, 피사 산조반니 세례당,
캄포산토 납골당과 함께 피사의 사탑이 비스듬하게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다.

기울어진 탑의 탄생

img3Jag_cz / Shutterstock.com

과거 피사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해군 기지의 역할을 했고, 11세기 초에는 베네치아, 제노바와 함께 이탈리아의 3대 해상국가로 불렸다. 당시 팔레르모 해전에서 사라센 함대를 격파한 피사는 이를 기념하고자 종교 건축물을 세우게 된다. 그렇게 세운 건축물이 바로 피사 대성당이다. 성당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종탑을, 서쪽에는 세례당을, 북쪽에는 납골당을 지었는데 성당 부속 종탑이 바로 피사의 사탑이다. 한 장소에 성당부터 묘지까지 갖춘 유일한 공간이기에 이곳을 ‘기적의 광장’이라고 부른다.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단연 피사의 사탑의 쓰러질 듯 기울어져 있는 모양새 덕분이다. 1173년부터 1178년까지 진행된 첫 번째 공사가 역사의 시작이었다. 점토와 모래 등으로 구성돼 약했던 피사의 지반에 대한 이해가 없이 종탑을 쌓기 시작한 것이다. 약한 지반을 보완하기 위해선 단단한 돌기둥을 박아 지지하는 과정이 필요했으나, 피사의 사탑은 3m 정도밖에 되지 않는 깊이의 지지대 작업을 거친 뒤 탑을 쌓았다.

탑이 높아질수록 약한 지반에 의해 부등침하(Differential Settlement) 현상이 나타났다. 이후 전쟁으로 인해 100년간 건설이 중단된다. 전쟁이 끝나고, 1272년부터 1278년 진행된 2차 공사와 1360년부터 1372년까지 진행된 3차 공사를 통해 기울어진 탑을 보완, 보강하며 세워졌고 200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피사의 사탑이 완공됐다. 세계 최초 기울어진 수직 건축물의 등장이었다.

img3SCStock / Shutterstock.com

피사의 사탑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

높이 58m, 무게 14,453t에 달하는 피사의 사탑은 완공 당시 1.6°가량 기울어진 채로 마무리됐다. 신기하게도 완공 후 약 600년의 세월 속에서 4번의 지진을 겪었지만 피사의 사탑이 무너지지 않고 보존됐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역설적이게도 사탑을 기울게 만든 연약한 지반 덕분이었다. 탑 아래의 무른 땅이 지진의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제 역할을 해 건물이 흔들려도 붕괴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와 더불어 종탑의 무게중심이 건물 내부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피사의 사탑은 오랜 기간 보존될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까지 피사의 사탑은 지속적으로 기울어 5.5°까지 기울었고, 붕괴 위험 수준으로 판단되어 폐쇄됐다. 11년여의 세월을 거쳐 보강공사가 진행됐다. 660t의 납덩어리를 사탑의 기운 쪽 반대 방향에 배치해 기울기를 완화시키기도 하고, 지반에 콘크리트를 주입하거나 땅에 액체질소를 주입해 얼리기도 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오히려 건물이 더 기울어지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찾아낸 방편은 기울어진 땅의 반대 방향, 즉 북쪽 지반의 흙을 굴착하는 것이었다. 이 방법을 통해 피사의 사탑은 2001년, 4°까지 기울기를 복원해 여행객들에게 공개됐다. 이후 피사의 사탑은 바로서기 시작해 2018년 기준 2001년보다 탑의 높이가 4cm 상승했다. 올해 말까지 8살 이하의 어린이는 탑에 오를 수 없고, 18세 미만인 경우 성인이 동반해야 한다. 15분 단위로 입장 티켓을 예매할 수 있고, 30분가량 탑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인원이 제한되어 있기에 피사의 사탑 내부를 둘러보고 싶다면 예약은 필수다.

img3Thoom / Shutterstock.com

단순하게 생각하면 피사의 사탑은 피사 대성당의 예배 시간을 알리는 종탑일 뿐이다. 그러나 기존 종탑과 달리 기울어졌다는 것 때문에 피사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피사 대성당을 구경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닌, 피사의 사탑 앞에서 기울어진 사탑을 손에 쥐고, 두 손으로 받치는 등 다양한 포즈로 인증사진을 남기러 피사에 방문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사람의 실수와 수습이 공존하는 피사의 사탑이 지금도 관광객들에게 사랑받으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의미 있는 것들을 떠올리며, 피사의 사탑을 감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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