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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X부터 CDMA까지,
이동통신기술의 살아있는 역사를 만나다

박항구 소암시스텔 회장

기술 개발을 향한 열정과 팀을 통솔하는 탁월한 통찰력으로
TDX-1, TDX-10 전전자 교환기와 CDMA의 상용화 성공이라는 결과를 만든 박항구 회장.
박항구 회장은 그 당시 바쁘게 진행됐던 연구로 ETRI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이동통신기술의 발전을 최전선에서 이끌어온 그를 만나보았다.

ETRI 웹진 구독자분들께 본인의 소개와 근황을 전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소암시스텔 회장 박항구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전자공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 전공 분야로 선택하여 관련 전자통신 분야에 종사했습니다. ETRI에서는 이동통신기술연구단장을 마지막으로 97년까지 근무했네요. 지금은 기업경영을 하고 있고, 전자공학회와 한국공학한림원과 같은 학회업무를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TRI 재직 시절 TDX와 CDMA 연구를 하시며 기억에 남았던 일화가 있으신가요?

전자교환기 연구에는 최소 수백 명의 연구원이 필요해요. 미국의 벨랩(Bell Lab) 같은 곳에서는 만 명 정도가 투입되는 규모의 연구죠. 그러나 우리는 20명 정도로 시작했어요. 적은 인원이었죠. 게다가 기술에 대한 지식을 확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어요. 당시 일본에서는 전자교환기 연구가 대학교에서 유행이었어요. 그래서 관련 논문이 발표되는 일본의 전자정보통신학회에 가입해 전자교환기에 대한 기본 기술 정보를 쌓아나갔죠. 더불어 특례보충역 제도를 통해 300명가량의 연구인력을 충원했고요. 이렇게 전자교환기의 기본 기술과 관련 연구인력을 확보해 나가는 과정이 순리적이었다고 생각해서 기억에 남네요.
이외에도 연구 결과의 시점이 중요해서 20여 년간 밤샘이 허다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300명의 연구원이 팀별로 연구한 내용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거든요. 그런데 그 연구의 진행 속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진도를 맞추기 위해 밤을 같이 새며 연구했죠. 동료들과의 신뢰를 구축하는 일들이 매우 중요했어요.

94년, 스웨덴 국왕(King Carl XVI Gustaf) 방문(박항구 회장-왼쪽)

CDMA 상용화에 성공하셨던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그럼요. CDMA는 전자교환기술의 네트워크 기술에 이동통신 기술을 접목한 거예요. 퀄컴(Qualcomm)과 함께 공동 연구를 진행해서 기술을 확보했는데요. CDMA가 기능을 발휘하려면 전파가 기지국, 제어기, 교환기를 거쳐야 해요. 이 과정은 CPU가 140번의 단계를 거쳐야 한 번의 콜이 이루어지는 원리죠. 연구원들이 이 140번의 과정을 일일이 확인했어요. 그리고 94년도 4월 17일, 첫 번째 콜이 성공했어요. 이것을 ‘에어 콜’이라 해요. 연구에 참여했던 모든 연구진이 모두 축하하는 축제 같은 분위기였어요. 이때를 계기로 우리가 가진 기술에 대해 자신감을 느끼게 됐죠.

(왼쪽) 94년, 러시아 ZNIIS 소장 방문(박항구 회장-중앙)
(오른쪽) 94년, 윤동윤 체신부장관 방문(박항구 회장-오른쪽)

ETRI 재직 시절엔 단장으로 다수의 팀을 이끄셨고, 현재는 소암시스텔의 회장으로 기업을 이끌어가고 계십니다. 리더로써 회장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연구개발 업무는 리더의 생각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선 장단기 기술 예측이 정확해야 하고 설계자(Architector)로서의 자질이 있어야 하며, 수백 명의 연구원들이 일하는 방법(Development Methodology)을 숙지하여 진행해야 하죠. 또한 연구원들의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연구 진도는 어떻게 단축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리더가 해야 할 중요한 일입니다.

ETRI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연구 방향에 대한 박사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항상 어려운 질문입니다. 과거 TDX나 CDMA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분들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선호해 국가가 필요한 공공 대형 프로젝트를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환경이 변해서 그런 연구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고, 그 결과로 ETRI의 연구가 위축되었다고 말하죠.
그러나 세계기술의 추세는 핵심기술 확보로 변화하고 있고, 로얄티 확보를 더 우선으로 보고 있어요. 신기술, 미래기술, 요소기술, 융합기술 등에 초점을 맞추되 기회가 주어진다면 대형 프로젝트 개발에도 목표를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ETRI 후배 연구원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ETRI를 떠난 지 27년가량 되니, 이제는 세대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ETRI 동문회장을 맡아 10년간 활동했을 때는 아는 후배들도 많았죠. 그러나 이제는 원장과 몇몇 고참들만 알고 지내고 있어요. ETRI의 과거 명예와 전통을 이어갈 수 있는 방향의 정신 무장과 실행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홍보도 매우 중요하고요. 무엇보다도 무수한 경험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생각하고, 통찰력 있게 연구하는 실력 있는 연구원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나이가 나이인지라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학회업무에 힘을 쏟으려 해요. 이와 관련해서 20명의 ETRI 전직 직원, 10명의 교수와 함께 <한국산업기술발전사: 정보통신>이라는 책을 3년에 걸쳐 집필했어요. 정보통신산업의 70년 역사를 담은 책이고, 발간까지 마쳤지요.
더불어 3년 전, 상용화 이후 25년 후에 신청이 가능한 IEEE Milestone상에 CDMA 기술을 신청했습니다. 3년의 심사 기간을 거친 후 지난달에 IEEE로부터 상을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올해 6월에 수상과 기념 플라크(Plaque) 제막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박항구
한양대학교에서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를 취득하였다.
1970년 금산전자㈜, 1972년 KIST를 거쳐 1977년 ETRI의 전신인 한국전자통신연구소에 입소해 TDX 개발단장, 통신정보기술연구단장, 교환기술연구단장, 이동통신기술연구단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1997년 현대전자산업㈜ 부사장, 2000년 하이닉스반도체㈜ 부사장, 2001년 ㈜현대시스콤 대표이사를 지냈으며 2005년 상호를 ㈜소암시스텔로 변경하여 현재까지 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