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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 Webzine

VOL.144
December 2019

ICT Trend — 인공지능 기술의 진화

이세돌 꺾은 알파고,
그리고 ‘알파고 제로’

인공지능 기술의 진화

지난 2016년 3월 필자가 근무하는 ETRI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세기의 대결, 바로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결전을 두고 연구원 두 명이 소위 번개 세미나를 연 것이다. 애초 순수한 목적으로 몇몇 연구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요량으로 ETRI 내부 게시판에 올리고 페이스북에 공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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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 연구진이 개발한 엑소브레인

‘바둑’에 도전하는 인공지능

지인들에게만 알렸는데도 불구하고 대덕연구개발특구에 수십 명의 연구원이 모여들었다. 좀처럼 보기 드문 사례이지만, 최근에는 융합 연구 활성화로 서로 소통하고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하자는 차원에서 이 같은 모임이 하나둘 활성화되고 있다. 그런 취지로 자유로운 연구와 소통 문화를 위해 서로 다른 ICT 분야 전문가들이 공통 관심사를 바탕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연구 소모임(AOC) 제도를 2016년 4월에 만들기도 했다. 현재 ETRI에는 이런 자발적 모임인 총 65개의 커뮤니티에서 260여 명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날 열린 세미나의 반응은 뜨거웠다. 바둑을 잘 두는 연구원이 직접 나서서 알파고가 둔 바둑을 세밀히 분석해주었다. 그리고 바둑 설명과 함께 관련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참석자들과 집단지성을 발휘해 논의를 이어나갔다. 이 세미나에 관한 내용은 실시간 SNS로 올려졌는데 순식간에 많은 사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공유하면서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지금까지 있었던 인공지능과 인간과의 대결은 싱겁게 끝난 적도 많다. 그동안 체스, 퀴즈, 장기, 포커, 바둑 등 다양한 경기를 겨룬 바 있다. 1967년부터 2015년까지는 이런 대결이 총 7번 있었는데 인간은 두 번 이겼을 뿐이다. 주목할 만한 예로는 IBM이 개발한 딥블루가 1997년에 체스 대결에서 인간 체스 고수를 꺾은 것, 마찬가지로 IBM의 왓슨이 2015년에 열린 퀴즈 대결에서 인간 퀴즈 챔피언들을 상대로 승리한 것을 들 수 있다. 바둑 대결에서는 2015년에 구글 알파고가 유럽의 프로바둑대회 우승자인 판후이 2단을 꺾은 바 있다. 바둑은 그 역사만 해도 5천 년이나 되는 유서 깊은 경기로 인간의 지략을 겨루는 가장 심오한 게임으로 인식되어왔다. 가로, 세로 19개의 공간이 있어 바둑돌을 놓는 착점만 361개다. 첫 번째 돌을 놓는 첫수만 확률로 따져도 12만 9,960 가지나 된다. 즉 전체 바둑 면을 활용하며 두는 바둑은 경우의 수가 무려 ‘10의 170제곱’이나 된다. 바둑은 경우의 수가 너무나 많기에 인공지능이라 하더라도 사람이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다.

ETRI 연구진이 개발한 엑소브레인 개념도

백만 번의 시뮬레이션으로 최적치의 값을 계산하다

이런 가운데 2016년에 변칙의 귀재이자 창의적인 수를 두는 것으로 유명한 최정상급 프로 바둑기사인 우리나라의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대표 격인 알파고가 세기의 대결을 펼쳤다. 알파고는 이세돌과의 바둑 대결이 있기 전에 수개월 동안 인간 바둑기사들이 둔 16만 건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기보를 학습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파고가 제한된 시간 내에 그 방대한 정보에서 얻은 기록과 통계들을 적절히 꺼내 쓸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했다.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학자들의 예상도 뜨거웠다. 인공지능 연구는 아직은 시작 단계이고 AI의 한계를 예측하는 것도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 대결은 알파고가 패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어느 전문가는 바둑은 추상적인 사고를 크게 필요로 하므로 100년내에 인간을 이기는 인공지능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창호 9단도 “알파고가 한 판도 이기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중국의 커제 또한 “이세돌의 5 대 0 승리를 100% 확신한다.”라고 강조했다. 알파고는 유럽 바둑대회 우승자인 판후이와 바둑 대결을 해 승리하기도 했지만, 2015년에 데뷔했고 프로 경력은 2년 정도에 불과했다.

한편 알파고가 이길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도 많았다. 그런 의견에는 대체적으로 연구원들이 동의했다. 지금까지 알파고는 바둑 대결을 해 원리를 배우고 16만 대국에서 나온 3,000만 수를 학습했다. 또한, 하루에 3만 번의 대국을 두도록 입력해 학습해왔다. 그 결과 알파고가 다음 바둑을 둘 착점을 예상하는 적중률이 57%로 향상되었다고 했다. 또 범용 그래픽처리장치(GPGPU)의 예를 드는 연구원들도 있었는데, 알파고는 이것을 176개나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 그래픽처리장치로 형세를 보고 공격적으로 바둑을 둘지 아니면 수비로 바꿀지 결정할 수도 있다고 했다. 또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컴퓨터로 확률변수의 미래값을 예측하는 방법)’의 장점을 들면서 경우의 수가 많아도 임의로 추출한 사례로 인해 가장 가까운 결론을 내기 때문에 연구원들은 알파고가 이길 것으로 보았다.

당시 알파고는 대략 프로 5단의 수준이라고 자체 추정했다. 알파고는 구글 딥마인드의 CEO 데미스 허사비스(Demis Hassabis)가 개발했다. ETRI가 최근 발간한 《미래를 사는 기술 5G 시대가 온다》에서 저자는 허사비스를 21세기의 프로메테우스에 비유했다. 프로메테우스가 자신이 창조한 인간에게 불을 주었듯이, 허사비스는 알파고로 대변되는 인공지능을 사람들에게 주었다고 표현했다. 그만큼 알파고가 우리에게 던진 파장은 컸다. 알파고는 1,200개 CPU와 176개의 GPU를 통해 바둑에 임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미국 중서부에 있는 구글 클라우드 센터에서 알파고 프로그램을 작동시켜 데이터를 받아 이를 기반으로 이세돌과 바둑을 둔 것이다. 구글 클라우드의 많은 컴퓨터를 이용해 대국 중 수백만 번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치의 값을 얻어 바둑을 둔다.

ETRI 연구진이 인공지능을 이용해 컴퓨터가 그림을 보고 해석하는 기능을 연구하는 분야 ‘딥뷰’

인간이 인공지능에 묻는 세상

결국 2016년 이세돌과의 바둑 대결에서 4 대 1로 승리하며, 바둑의 역사를 다시 쓴 알파고는 진화를 거듭해 가장 최근의 알파고인 ‘알파고 제로(Zero)’를 탄생시켜 또 한 번 전 세계를 경악케 했다. 이세돌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지 1년 반 만의 일이다. 알파고 제로는 그동안 기보도 보지 않고 독학했다. 구글 딥마인드는 “인간 지식 없이 바둑을 마스터하기(Mastering the game of Go without human knowledge)”라는 논문을 과학잡지 <네이처>에 발표했는데 ‘알파고 제로’가 이세돌을 꺾은 ‘알파고 리(Lee)’를 상대로 100 대 0으로 이겼다는 내용이 실렸다. 알파고 제로는 딥러닝 과정은 생략하고, 바둑의 원리를 알고 바로 강화 학습에 70시간을 투입해 단 3일 만에 세계적인 바둑 실력을 키웠다고 한다. 홀로 3일 만에 490만 판의 바둑을 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GPU 도움 없이 오로지 4개의 텐서 프로세싱 유닛(TPU, Tensor Processing Unit)만 사용해 가동된다. 쉽게 말해 TPU는 구글의 차세대 인공지능용 칩셋이다. 뒤이어 알파고 제로는 40일 동안 학습을 통해 2,900만 판을 두어 커제를 이긴 최신 알파고 버전인 ‘알파고 마스터(Master)’를 상대로 승리했다고 한다. 알파고 제로는 더 이상 인간의 도움이 필요 없게 된 것이다.

진화를 거듭해 알파고 제로로 거듭난 소름 돋는 현실에 국내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터질 게 마침내 터졌다는 시각들이었다. 국민도 최근 몇 년 동안 알파고와 인간 바둑 고수들이 보여준 대결을 통해 인공지능이란 무엇인지 또한 인간과 기계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확실한 계기가 되었다. 인공지능과 기술에 대해 이보다 값진 교육이 어디 있겠는가? 현재 ETRI에서도 현재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 관련 연구가 뜨겁다. 인공지능을 통해 음성인식과 자동 통역 분야를 연구하고 있으며, 음성지능연구그룹에서는 <장학퀴즈> 프로그램을 통해 퀴즈 왕이 된 ‘엑소브레인’ 연구도 일반인에게 API를 공개하는 등 차근차근 연구를 진행 중이다. 엑소브레인은 ‘내 몸 밖의 또 다른 두뇌’를 뜻한다. ETRI 연구진은 인공지능의 또 다른 분야로서 ‘딥뷰’도 연구하고 있다. 딥뷰는 AI를 이용해 컴퓨터가 그림을 보고 해석하는 기능을 갖도록 연구하는 분야다. 쓰레기 무단투기나 범죄예방 등에도 향후 접목이 기대된다. 아울러 지능형반도체 분야 연구도 한창이다. 무인자율자동차의 두뇌가 되기 위한 준비도 끝난 상태다.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에 대한 투자와 연구가 뜨거운 가운데, 최근 알파고의 바둑 대결에 배가 아픈 기업들도 있다. 바로 마이크로소프트, IBM, 애플 등이다. 이 기업들도 인공지능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기에 구글의 알파고가 전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되자 깜짝 놀란 것이다. 이렇듯 구글이 알파고로 바둑 등의 경기를 통해 몸값을 올리자, IBM은 슈퍼컴퓨터 왓슨을 의료 분야에 도입해 질병을 진단하는 데 활용하고 있으며, 농구선수를 영입하는 에이전트로 투입하여 쓰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공지능 기상캐스터 ‘샤오빙(小氷)’, 그리고 애플은 ‘시리’로 맞서며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과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IBM은 최근 한국어를 지원하는 ‘왓슨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공개하기도 했다. 왓슨 API는 해당 국가의 언어를 익혀 비즈니스를 돕는 인공지능이다. 이로써 기업들은 새로운 사업 기획을 하거나 다양한 앱을 만들어 상용화하는 데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국어를 익힌 왓슨은 비즈니스 분야에서 롯데제과와 손잡고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이미 2017년에 인공지능 왓슨을 활용해 새로운 빼빼로 제품을 출시했다. 바로 ‘빼빼로 카카오닙스’, ‘빼빼로 깔라만시 상큼 요거트’가 그것이다. 왓슨을 통해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아이디어를 찾아 상품화한 것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맛과 식감, 소재 등을 알아내는 상품 기획자가 해야 할 일을 이제는 인공지능에 물어보는 세상이 되었다.

이세돌과 알파고 간 대결은 분명 우리에게 큰 인사이트를 주었다. 인공지능이 무엇인지? 향후 인공지능의 방향이 어느 곳으로 가는지에 대한 어렴풋한 길을 제시한 것이다. 지난주 이세돌 9단이 바둑계를 떠났다. 최후의 승부는 NHN에서 만든 인공지능 ‘한돌’과의 대국이었다. 첫 인공지능과의 대국이 이후 3년 9개월여 만이다. 물론 이세돌 9단이 두 집을 접어두고 한 접바둑에서는 이겼지만, 맞바둑에서는 패배했다. 첫 대국 이후 지난 세월 동안 인공지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국산 인공지능도 이젠 전설을 쓰는 이 9단을 이길 정도가 되었다. 인공지능을 잘 쓰는 나라가 21세기를 분명 지배할 것이다. 과거 정보화 혁명을 잘 활용한 덕분으로 우리나라가 발전한 것처럼 지능화 혁명의 파고를 슬기롭게 우리가 헤쳐 나가길 기원한다.

본 글은 ETRI가 2018년 발행한 Easy IT시리즈 “세상을 바꿀 테크놀로지,『디지털이 꿈꾸는 미래』”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디지털이 꿈꾸는 미래

저자  ETRI 홍보실·정길호    출판사  콘텐츠 하다

ETRI가 펴낸 『디지털이 꿈꾸는 미래』는 우리에게 제4차 산업혁명의 의미를 알려주고, 다양한 ICT 트렌드를 소개하여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흥미롭게 조망해 보는 책입니다. 본 도서는 예측 불가능하고 더 빨라진 기술 세상에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적응하고 미래의 위험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데 좋은 지침이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