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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 Webzine

VOL.138
September 2019

ICT Trend — 이동통신 기술의 역사

한국의 현재가
세상의 미래가 되게 하라

이동통신 기술의 역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구 미래창조과학부가) 지난 2015년에 광복 70주년을 맞아 ‘과학기술 대표 성과 70선’을 선정했다. 이를 통해 1945년 광복 이후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끝난 후 잿더미 속에서 일군 과학기술의 성과라 의미가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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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 개발 당시의 시제품

세계 속 강국으로 이끌어준 과학기술

과학기술은 오늘날 우리나라를 세계 속 강국으로 견인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예를 들면 ETRI가 개발한 ‘전전자교환기(TDX, Time Division Exchange), 반도체(DRAM), 디지털 이동통신 시스템(CDMA), 휴대 인터넷 와이브로(WiBro)’ 등은 과학기술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 ICT라는 비옥한 산업의 틀과 성장의 토대를 가져다주었다. ETRI는 지난 2016년, 창립 40주년을 맞아 ‘ETRI 40년 연구성과 종합분석’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위 열거한 4개 기술의 경제적 파급 효과만 해도 무려 194조 원에 달한다. 이 기술이 훗날 W-CDMA, LTE, LTE-A로 발전해 이룬 금액까지 합하면 237조 원에 달한다. 가히 대한민국의 경제를 이끌어온 대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TDX’는 우리나라의 ‘1가구 1전화 시대’를 실현시켜준 기술이다. 한 집에 한 대의 전화기를 선물해준 셈이다. 1970년대 초반 백색 전화, 청색 전화밖에 없던 시절, 전화 한 대의 가격은 서울시 내 50평 아파트 한 채보다 비쌌다. 그만큼 전화가 희소했던 시절 ETRI 연구진이 1986년에 세계에서 열 번째로 디지털식 전자교환기를 독자 기술로 개발하면서 특권층만 누리던 전화가 드디어 일반 국민의 통신 수단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TDX 연구개발은 ETRI가 창립된 지 2년 만에 시작되었다. 1982년부터 5년간 연인원 1,300여 명이 투입되어 약 240억 원의 연구개발비가 투입되었다. 당시 큰 공장을 세우는 데 50억 원의 돈이 필요했고, 그때 ETRI의 연간 예산이 29억 원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천문학적 예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선진국만 갖고 있던 TDX를 당시 우리나라 기술 수준으로 개발한다고 했을 때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연구원 창립 이래 가장 큰 프로젝트이며 훗날 ‘단군 이래 최대 R&D 프로젝트’라는 말도 나왔다. 1978년에 시작된 TDX 연구는 1993년까지 이어졌다. 연구비는 1,076억 원이 투입되었고, 투입된 연구원만 3,146명에 달했다. TDX 개발로 인한 경제적 파급 효과가 37조 원이었다.

이처럼 TDX는 우리나라의 만성적인 전화 적체 해소에 큰 기여를 한 통신 시스템이다. ‘교환기’라고도 불리는데, 교환원의 도움 없이도 자동으로 전화를 연결시켜 주는 스위칭 시스템을 잘 나타내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 교환기는 한 가정에 전화기 한 대 시대를 연 것은 물론 전국 전화의 자동화를 실현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훗날 TDX의 기술 개발 노하우는 반도체, 슈퍼컴퓨터, CDMA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당시 참여 연구원들은 입을 모은다. TDX 연구 총괄 책임자였던 임주환 전 ETRI 원장은 “창조란 모두가 안 된다고 막아서는 실현 불가능함에 과감히 도전하고 맞서는 데에서 시작된다.”라고 말하며 TDX 개발 당시를 술회하기도 했다.

ICT 강국의 신화를 만들어준 반도체

반도체는 일명 ‘산업의 쌀’이라고도 불린다. 그만큼 산업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것이다. DRAM(Dynamic Random Access Memory) 개발은 우리에게 반도체 강국의 신화를 만들어주었다. 미국, 일본이 선두 주자로 저만큼 뛰어가는데 우리는 반도체 후발 주자로 출발했다. 빠른 추격자였던 셈이다. 출발은 늦었으나 3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명실상부한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 보유 국가로 성장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세계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당시 초고집적 반도체 기술 공동 개발(안) 문서는 대통령이 최고 결재권자였다. 기술 개발 문서의 표지에는 대통령이 직접 작성한 기술 개발 성공의 염원이 담겨 있다. ETRI 원장이 공동 개발 업체인 국내 회사와 협조해서 꼭 성공하라는 메시지였다. 연구원들은 반도체 개발 성공을 ‘선진국으로 가는 열차’에 비유해 만화로 만들어 서로 돌려가며 읽으면서 성공 개발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ETRI가 개발에 성공한 4M, 16M, 64M DRAM은 1986년 연구원을 중심으로 산학연이 혼연일체 되어 이룩한 결과다. ETRI가 개발에 착수한 1985년에 미국과 일본은 4M DRAM 시제품을 개발 중에 있었다. 후발 주자였던 우리나라는 64K, 256K DRAM, 1M DRAM 수준으로 선진국과 기술 격차가 컸다.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는 길은 오직 하나, 차세대 혁신 제품을 더 빠르게 개발하는 길밖에 없었다. 연구진은 ‘초고집적 반도체’ 개발로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반도체 강국으로 성장하는 데 주춧돌을 놓았다. DRAM 개발의 성공을 토대로 우리나라의 산업 수출 구조 자체가 획기적으로 변했다. 그동안 노동 집약적, 자본 집약적 수출 산업구조가 드디어 기술 집약적 산업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에 DRAM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울러 우리나라가 ICT 강국으로 출발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반도체 신화에 관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있지만, 반도체 생산의 산실로 불리는 ETRI 4 연구동은 그 신화의 중심으로 최고의 명당으로 꼽힌다. 반도체를 생산하는 실험실인 팹(Fab, fabrication facility)이 있는 곳이다. 당시만 해도 연구원에 팹이 있는 곳은 ETRI가 유일했다. 30년이 흘렀지만, 현재 소재부품연구소 연구원들이 그곳에서 실험하고 있다. 그만큼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명성 어린 실험실이 되었다.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ETRI

세 번째 성과로 이름을 올린 것은 ‘CDMA(Code Division Multiple Access)’ 기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코드분할 다중 접속’으로도 불린다. CDMA는 우리나라가 이동통신 강국으로 성장하는 데 초석이 된 연구성과다. 1가구가 아닌 ‘1인 1전화 시대’를 열어준 것이다. 1989년부터 1996년까지 연구가 이루어졌다. 투입된 연구비는 996억 원이다. 투입된 연구원만도 1,042명이나 되었고, 경제적 파급 효과는 109조 원에 달한다. 연구진은 이 연구개발을 위해 ETRI 내 CDMA 작전본부를 설치하여 기술 개발 성공을 위한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 믿고 투자해주는 국가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개발에 임했다. 그 결과 ‘ETRI가 만들고 세계인이 함께 쓰는 통신’이 된 것이다. 또한, CDMA 상용화 성공은 우리나라가 이동통신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름을 올린 휴대 인터넷 ‘와이브로(WiBro, Wireless Broadband Internet)’는 차량은 물론 언제 어디서든 고속으로 이동 중에도 끊김 없는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가능하게 만들어준 기술이다. 특히 와이브로는 해외수출로 이어져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였다. 2003년부터 개발에 착수하여 2005년에 완성된 와이브로는 연구비는 385억 원이 투입되었으며, 256명의 연구원이 참여한 프로젝트다. 경제적 파급 효과는 1조 6,000억 원이다. 와이브로 개발로 4세대 이동통신 기술의 세계 시장 선점의 가능성을 높여주기도 했다. 와이브로 개발 당시만 하더라도 인터넷은 사치였다. 인터넷은 너무 느렸고 비싸기만 했다. 무선랜은 장소 찾기가 어려웠다. 당시에는 혁신적이었던 와이브로의 목표는 ‘언제 어디서나 정지 및 이동 중에도 고속으로 무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상상 이상의 꿈만 같던 기술이었다. 특히 한국의 ETRI가 와이브로를 개발한다고 하자 난리가 난 곳은 다름 아닌 미국이었다. ETRI가 중심으로 기초 기술을 연구하고 국제표준을 정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태클을 걸었기 때문이다. 곧바로 통상 압력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미국은 자국의 기업들이 관련 기술을 한국으로 수출하는 데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꾸준히 주장하던 터였다. 다행히 미국과의 통상 마찰을 슬기롭게 극복해냈고 와이브로를 수출할 수 있는 길도 열 수 있었다. 이때 유행하던 말이 ‘호모 포터블리우스’였다. 휴대 인터넷(Portable Internet)이 와이브로 시대를 대변하기도 했다. 실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와이브로 기술 개발로 우리나라는 CDMA의 영광을 재현했고, 휴대 인터넷 기술은 우리나라를 이동통신 강국으로 재확인시켜 주었다.

현재 ETRI는 새로운 비전과 함께 새로운 경영 및 조직개편을 단행하며,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속도 변화가 빠른 ICT 분야에서 5년, 10년씩 계획을 수립해 세계 1등 ICT 강국 코리아를 견인한다는 것이다. ETRI의 현재가 세상의 미래가 되도록 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으로부터 신뢰받고 사랑받는 연구소가 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본 글은 ETRI가 2018년 발행한 Easy IT시리즈 “세상을 바꿀 테크놀로지,『디지털이 꿈꾸는 미래』”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디지털이 꿈꾸는 미래

저자  ETRI 홍보실·정길호    출판사  콘텐츠 하다

ETRI가 펴낸 『디지털이 꿈꾸는 미래』는 우리에게 제4차 산업혁명의 의미를 알려주고, 다양한 ICT 트렌드를 소개하여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흥미롭게 조망해 보는 책입니다. 본 도서는 예측 불가능하고 더 빨라진 기술 세상에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적응하고 미래의 위험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데 좋은 지침이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