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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 Webzine

VOL.137
September 2019

ICT Trend — 슈퍼컴퓨팅과 유전자 분석 기술

안젤리나 졸리가
15년 전에 태어났다면?

슈퍼컴퓨팅과 유전자 분석 기술

영화배우이자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안젤리나 졸리는 자신이 연기한 액션 영화의 캐릭터처럼 당당한 행보를 보이며 주목받는 세계적인 배우다. 그녀는 아이 6명을 입양해 키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몇일 전 그의 아이가 우리나라 연세대에 입학을 위해 방한한 바 있다. 그렇지만 졸리가 15년 전에 태어났더라면 오늘의 졸리는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 어떠한 이유에서일까? 이번 호에서는 슈퍼컴퓨팅과 유전자 분석기술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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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로 미래에 발병할 암을 미리 제거한다

최근 슈퍼컴퓨팅의 비약적 발전에 따라 유전자 분석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1990년대 초부터 행해졌던 유전자 검사 1회 비용은 당시 수조 원에 달했다. 지금은 수십만 원에서 100만 원 범위에서 유전자 검사가 가능하다. 어쩌면, 인간 수명 연장의 핵심기술은 의학이 아닌 ICT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사람들은 보통 유전자 분석이라고 하면 TV 드라마에 나오는 친자 확인과 절차를 상상하지만, 슈퍼컴퓨터(이하 ‘슈퍼컴’으로 칭함)가 활용되는 유전자 분석은 대상 집단이 다르다. 예를 들면 암이나 난치병 같은 유전자와 당사자의 유전자를 분석한다. 슈퍼컴의 탁월한 분석력은 이제 인간의 난치병을 찾아내고 병이 완치되도록 돕는 기술로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이런 유전자 분석 기술이 있기까지는 분자생물학의 역할이 컸다. 1990년에 세계 과학자들이 30억 쌍의 단백질로 이뤄진 DNA를 밝혀내기 위해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리고 2003년 4월에 드디어 인간 게놈 지도가 완성되었다. 이 지도를 완성하는 데 1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안젤리나 졸리의 주치의는 그녀의 어머니가 57세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사망하자 유전자 검사를 권유했다. 졸리는 이에 응해 유전자 변이 검사, 즉 ‘브라카(BRCA)’ 검사를 받았다. 그 결과 졸리는 유방암의 발병률을 높이는 BRCA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지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유전자는 손상되면 다시 회복하는 기능을 가진다. 하지만 BRCA1, BRCA2라고 불리는 유전자는 변이가 일어나면 원래대로 회복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이 두 유전자에 변이가 있다면 유방암과 난소암의 발생 확률을 50% 정도로 본다. 졸리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미래에 발병할 암을 미리 제거하기로 하고, 2013년에 유방 절제 수술을 받았고 양쪽 유방 모두를 절제했다. 배우라는 직업적 차원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졸리의 어머니인 마르 셀린 버트란드 역시 영화배우였다. 그녀는 난소암에 걸려 2007년 57세에 사망했다. 졸리의 어머니뿐만 아니라 외할머니도 유방암 병력이 있었다. 이러한 가족력에도 예방적 유방 절제술이라는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졸리는 2015년에 난소암 예방을 위해 난소 적출 수술까지 받았다. 훗날 그녀는 이런 자신의 결정은 어머니와의 약속이었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현대 의학과 과학기술을 믿고 졸리는 행동에 옮겨 수술을 받았고, 오늘날과 같이 건강한 모습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ETRI의 바이오 특화형 슈퍼컴퓨터인 마하 시스템을 이용하여 유전체를 분석하는 모습

발전하는 고성능 컴퓨팅 ‘마하’

졸리는 2013년에 유방 절제 수술이 끝난 후 <뉴욕타임스>에 기고를 했다. 졸리는 “내가 경험한 것과 같이 내 아이들이 유방암으로 인해 엄마를 빨리 잃게 되는 비극을 보여줄 수 없었다”라고 밝혔다. 당시 졸리의 수술을 놓고 과잉 진료 및 대응이라며 의학적 논란이 있었다. 사실 미래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졸리가 현대 최첨단 과학의 힘을 빌리지 못했더라면 그녀의 어머니나 외할머니가 걸었던 그 길을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졸리의 수술로 인해 유전자 분석 기술에 대한 신뢰성은 더욱 커졌고 유전자 검사에 대 한 관심도 급증했다. 이를 두고 ‘안젤리나 효과’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유전자 분석 관련 주가가 급등했고, 선제적 암 절제술에 대한 관심도 크게 증가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7년 6월에 유전자 치료 관련법이 통과되어 유전자 관련 시장 활성화는 물론 관련 기술의 상용화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추세라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공하는 건강검진기록표 뒷장에 ‘슈퍼컴이 분석한 나의 유전자 지도’가 등장할 날도 머지 않은 듯하다. ‘10만 원대 개인 게놈 시대’가 열릴 가능성도 높아졌다. 우리나라는 유전자 분석 시장 이전에 바이오마커(bio-marker) 시장이 먼저 열렸다. 바이오마커란 단백질, DNA, RNA, 대사 물질을 이용해 몸 안의 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지표다. 사람의 혈액을 DNA 칩화해 질병 관련 유전자의 유무를 찾는 것이다. 현재 6만여 개에 달하는 유전자 정보를 마킹해 알려주는 서비스가 시행 중이다. 현재 바이오마커 서비스 시장이 확대되고 있으며, 20만 원 내외의 비용으로 해당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고 한다.

현재 HPC, 즉 고성능 컴퓨팅(High-Performance Computing) 기술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동일 시대에 가장 뛰어난 성능의 HPC를 ‘슈퍼컴’이라고 부른다. ETRI의 슈퍼컴인 마하는 인간 유전체(human genome) 빅데이터의 특수성을 고려하며, 대규모 데이터를 수용하는 바이오 전용 슈퍼컴이다. 그러나 현재 연구 과제 종료로 인해 그 수명을 다했다. 마하는 2011년부터 6년 이상 연구진이 활용했다. ETRI는 마하에 4페타바이트(PB)의 빅데이터 저장 공간을 제공해 함께 연구를 수행했다. 국제 공동 연구로 확보한 전 세계 2,000명의 암 유전체 데이터를 ETRI의 마하를 이용해 동시에 분석할 수 있는 플랫폼 구축도 완료했다. 이처럼 마하는 인간 유전체를 분석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마하는 이제 환자들에게 장기 기증을 하듯 핵심 부품을 차기 연구를 위해 떼어주었다. 현재 마하는 페타바이트급 성능에서 엑사바이트(EB)급 스토리지를 만들기 위해 변신 중이다. 메모리 등은 ETRI의 다른 연구 과제를 위해 분리해 두었다. 후속 과제를 위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늘어나는 인간의 수명

생명공학 분야에서도 인간 수명과 관련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몇 년 전부터는 ‘유전자가위’라고 불리는 유전자 편집(Genome Editing) 기술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이는 말 그대로 난치병이나 암과 같은 유전자를 발견해 싹둑 잘라내는 기술이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가 생명과학에 이용되면서 문제를 발생시키는 유전자들을 정확하게 잘라낼 수 있게 되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란 길잡이 역할을 하는 크리스퍼(CRISPR)라는 RNA가 표적 유전자를 찾아가 ‘Cas9’이라는 효소를 이용하여 DNA 염기서열을 잘라내는 방식을 말한다. 이런 유전자 편집 기술이 실현됨에 따라 암은 물론 에이즈, 루게릭병 등과 같은 난치병 치료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수명은 점차 연장되고 있다. 더욱이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의 기대수명은 125세가 될 것이라는 보고도 있다. 인간이 장수하는 데에는 의학 기술과 생명공학 기술의 진보가 큰 역할을 했다. 그만큼 ICT의 발전에 따른 기여도 크다. 앞으로 관련 기술 들은 융합에 융합을 더해 더욱 더 진보할 것이다.

슈퍼컴의 성능 순위가 궁금하다면 ‘탑500’ 사이트(www.top500.org)를 방문해보면 된다. 이 홈페이지에서는 글로벌 500대 슈퍼컴 리스트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슈퍼컴 수준은 세계 15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누리온과 99위, 100위에 기상청 슈퍼컴 ‘누리’와 ‘미리’가 각각 차지하고 있다.(2019년 6월 기준) 불과 2년 전만 해도 세계 50위권 내 슈퍼컴이 아직 우리나라에는 없었지만, 지난해 슈퍼컴퓨터 5호기(누리온) 개통과 동시에 15위에 올랐다. 현재 슈퍼컴 세계 1위가 미국 IBM의 ‘써밋(Summit)’이다. 2018년에 엑사플롭스(ExaFLOPS)급 텐허 모델을 개발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중국은 현재 3위를 기록했다. 1엑사플롭스는 초당 100경 번의 연산처리가 가능한 수준의 성능을 의미한다. 현재 전 중국은 양자 컴퓨터 분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이 저만큼 앞서고 있는데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투자가 늦어져 안타깝다.

본 글은 ETRI가 2018년 발행한 Easy IT시리즈 “세상을 바꿀 테크놀로지,『디지털이 꿈꾸는 미래』”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디지털이 꿈꾸는 미래

저자  ETRI 홍보실·정길호    출판사  콘텐츠 하다

ETRI가 펴낸 『디지털이 꿈꾸는 미래』는 우리에게 제4차 산업혁명의 의미를 알려주고, 다양한 ICT 트렌드를 소개하여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흥미롭게 조망해 보는 책입니다. 본 도서는 예측 불가능하고 더 빨라진 기술 세상에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적응하고 미래의 위험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데 좋은 지침이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