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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RI Webzine

VOL.122
January 2019

ICT Trend  ____  과학과 예술의 만남, 비디오 아트

과학예술이 융합된
창조적 콘텐츠,
프랙털 거북선

과학과 예술의 만남, 비디오 아트

‘첨단 과학기술 도시’이자 ‘제4차 산업혁명 특별시’로 불리는 대전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전초기지이다. 과학의 도시답게 도시 곳곳에는 과학과 관련된 건축물을 만날 수 있는데, 그 중 ‘대전시립미술관’을 빼놓을 수 없다. 특별히 대전시립미술관을 언급한 이유는 세계적인 작품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 2층에 들어서면 중앙을 꽉 채운 작품 한 점이 관람객을 맞는데, 바로 세계적인 비디오 예술가 백남준의 작품 <프랙털 거북선>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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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문화와 ICT의 우수성을 나타내는 ETRI 디지털 첨성대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프랙털 거북선>

<프랙털 거북선>은 대전 시립미술관의 상징물과도 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백남준의 또 다른 작품 <다다익선>(1988년 작)과 견줄 만한 그의 일생의 대작으로 손꼽힌다.
<프랙털 거북선>은 ICT와 일맥상통하는 면도 있고, ETRI와의 인연 또한 각별하다. ETRI에 있는 ‘디지털 첨성대’와 그 짝을 이루어 한국의 전통문화와 ICT의 우수성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 작품명에서 ‘프랙털(Fractal)’은 본래 물리학, 수학 용어다. 사전적 의미로는 ‘임의의 한 부분이 전체의 형태와 닮은 도형’을 일컫는다. 프랑스의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Benoit Mandelbrot)가 처음 제시했다. 특히 프랙털 개념은 컴퓨터그래픽(CG)에 많이 응용되고 있다. 또한, 바다의 해안선이나 구름의 모양 등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쉽게 설명하면 작은 구조가 전체의 구조와 닮은꼴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를 프랙털이라고 한다.

<프랙털 거북선>에서도 하나하나의 구조들이 반복적으로 되풀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은 조각의 부품들이 모여 전체적으로 어우러져 커다랗고 웅장한 거북선을 이룬다. 무질서해 보이지만, 통일성과 규칙성을 갖추고 있다.

백남준은 이 작품을 설계할 때 거북이에 초점을 맞췄다. 거북이는 예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장수 동물의 하나로 공룡과 동시대에 살았으나 현재까지 살아남았다. 지구를 파괴하는 인류를 작품 속 장수 거북이와 함께 비교함으로써 다양한 메시지를 인간에게 던지고 있다.

생전에 백남준은 “거북은 공룡 시대부터 이미 지금과 같은 상태로 생존해 있었고, 공룡이 멸종된 지금도 계속 살고 있다. 개인으로 친다면 장수다. 빠르게 문명을 만들고 동시에 지구 자체를 파멸시키는 인류와는 정반대다. 따라서 인간 문화의 감속화, 장수화에 초점을 맞추는 재순환 정신의 상징적 존재다.”라고 말한 바 있다. <프랙털 거북선>은 TV, 비디오, 레이저 등을 이용해 만든 비디오아트 작품이다. 1993년 대전에서 개최된 엑스포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제작되어 엑스포 동안 전시되었다. 대전엑스포가 끝나고 전시관 운영이 대전시 지방공사로 이관되며 2001년에 시립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백남준의 <프랙털 거북선>이 대전에 온 지도 올해로 벌써 25년이나 되었다.

대전 시립미술관에 전시된 백남준의 프랙털 거북선

과학기술을 예술로 편입시킨 개척자, 백남준

<프랙털 거북선>은 2009년 서울시가 기획한 ‘서울 빛 축제’ 당시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 옆에 대형 유리창을 씌워 2010년 1월 초에 전시하기도 했다.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이 오랜만에 만난 거북선을 보고 많이 기뻐했을 것 같다. 당시 작품을 옮겨 새롭게 구축하는데 2주일이 걸렸다고 한다. 거북선의 각종 부품 및 소재 등을 애초 설계도에 따라 재구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거북선을 분해하는 데만 천만 원이 넘게 들었고, 2009년 당시 작품 보험가가 십억 오천만 원이 책정되었다고 한다.

<프랙털 거북선>은 어찌 보면 오래된 전파상에 있는 앤티크 전자제품들을 순서 없이 쌓아 놓은 듯 보인다. 하지만 하나씩 자세히 보면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348개의 낡은 TV, 축음기, 소화기, 전화, 카메라, 라디오 등 많은 전자제품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TV 형태의 디스플레이만도 250여 개에 달하며, 부품 수는 1,000여 개가 넘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거북선을 둘러싼 외부에는 뚜껑 없는 그랜드피아노가 자리하고 있고, 몸통 중앙에는 부서진 자동차 차체도 보인다. 자동차 문에는 백남준 작가가 그린 것으로 보이는 익살스러운 거북이가 두 마리 그려져 있다. 자동차 창문을 통해서는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훔쳐보는 듯한 홀로그램 초기 영상과도 같은 장면을 보여준다. 박제된 거북이도 있다.

초당 수차례 화면이 바뀌며 보는 이로 하여금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역동적으로 영상이 디스플레이 된다. 이와 함께 네온 등으로 만든 형광 노(櫓)가 양옆으로 힘차게 달려 있다. 노가 아래위로 움직이면 마치 거북선이 하늘로 비상하는 듯하다. 거북선의 가로는 날개를 포함해 8m가량 되고, 세로 길이는 12m, 높이는 5m로 매머드급이다. 거북선 등과 주변에 장착된 TV는 과거 시점이다 보니, 지금처럼 발전된 UHD나 HD의 평판 디스플레이가 아닌 SD TV들로 뒤가 뚱뚱한 브라운관 형태의 옛날 수상기들이다. 심지어 1928년식 TV도 있다고 한다. 거북선 전면에 보이는 작품에는 배의 노와 거북이 머리가 달려 영락없는 거북선이다. 후면은 한산대첩의 한산도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백남준은 TV와 비디오를 사용해 예술로 승화시킨 천재 예술가로 평가된다. 누구도 폐기 처리된 전자제품을 이용해 작품화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과학자들과 일맥상통하는 독창성, 창의성을 가진 천재라는 의미다. 그는 낡은 전자제품과 비디오, 오디오를 통해 새로운 영역의 비디오 아트를 만들었다. 이처럼 그는 과학과 예술을 수시로 탐한 예술가였다. 아쉬운 점은 작품 자체를 온전히 사진 촬영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카메라 화상에 작품이 온전하게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웅대하고 거대한 풍모의 거북선이다. 고인이 된 백남준은 대전과 인연이 깊다. 대전엑스포 개최 당시부터 그가 타계하기 전인 2000년대 초반까지도 국립중앙과학관과 서울 등지에서 ‘로봇, 백남준에서 휴보까지’와 같은 과학과 접목한 전시회 기획도 여러 번 했다. 과학과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고 예술로 승화시켜 현대인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거북선을 이미지화해 ‘영원함’이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백남준은 과학기술을 예술 장르로 편입시킨 진정한 개척자가 아닐까.

본 글은 ETRI가 2018년 발행한 Easy IT시리즈 “세상을 바꿀 테크놀로지,『디지털이 꿈꾸는 미래』”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디지털이 꿈꾸는 미래

저자  ETRI 성과홍보실·정길호    출판사  콘텐츠 하다

ETRI가 펴낸 『디지털이 꿈꾸는 미래』는 우리에게 제4차 산업혁명의 의미를 알려주고, 다양한 ICT 트렌드를 소개하여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흥미롭게 조망해 보는 책입니다. 본 도서는 예측 불가능하고 더 빨라진 기술 세상에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적응하고 미래의 위험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데 좋은 지침이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