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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vol.30 201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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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의 삼합 국악, 폭포, 와인

우리나라에 ‘영동’이란 지명을 가진 곳은 대략 세 곳인데,
강원도 대관령 동쪽에 있는 지역인 嶺東과 서울 영등포의 동쪽지역을 일컫는 永東,
그리고 포도와 와인으로 유명한 충청북도 최남단의 永同郡이 그것이다.
세 곳 중에서 충북 영동은, 멋진 인생을 원하는 이들에게 이곳에 와서 ‘듣고, 보고, 음미하라’며 손짓한다.

국악을 들으며 그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겨우내 꽁꽁 언 얼음기둥을 뚫고 요란하게 떨어지는 폭포수를 바라보고,
신의 물방울 와인을 지그시 눈을 감고 음미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삶의 운치와 풍류라고 말하는 충북 영동으로 봄 마중을 떠났다.

충북 영동은 충청·전라·경상 등 3개의 도(道)가 맞닿아 있는
우리나라 국토의 중심에 위치한 과일의 성지이자,
난계(蘭溪) 박연 선생의 천년 혼이 살아 숨 쉬는 국악의 본향이다.
또한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이 분기되는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청정한 자연풍경과 함께 풍요로움이 넘치는 고장이기도 하다.

박연 선생의 숨결이 느껴지는 ‘난계국악박물관’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에서 태어난 난계 박연(朴堧, 1378~1458) 선생은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음악가로서
가야금을 만든 신라의 우륵, 거문고를 만든 고구려의 왕산악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불린다.
박연 선생은 세종 때 율관(律管 : 동양에서 악율의 표준을 정하기 위하여 만든 12개로 된 관)을 만들어 편종과 편경을 제작하고, 악보를 편찬하였다.
또한 궁중음악을 개혁하고 정리하여 아악 및 향악 등 국악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난계는 특히 음율(音律)에 밝아 대금을 잘 불었으며 거문고와 비파 연주도 뛰어나서 세종의 뜻을 받들어 각종 제례 음악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난계국악박물관은 난계의 얼이 살아있는 67종의 전통 국악기를 전시하여 그의 음악적 업적을 계승하고자 2000년 9월 문을 열었다.
박물관 로비에 난계의 흉상이 놓여있고, 난계실에서는 난계의 일대기, 국악 연대표, 세종대왕과 난계의 각별한 관계 등에 대한 자료들을 만나 볼 수 있으며,
제대로 조율되지 않은 악기들의 불협화음을 해결하기 위해 난계가 만들었다는 12율관부터 악기제작과정, 제례악 연주 모형까지 세심히 전시되어 있다.
그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난계와 부인 송씨의 초상화인데, 가로 53cm, 세로 99cm 크기의 조선후기 작품으로
당시가 남존여비 시대임을 감안할 때, 부부가 함께 그려진 이 초상화는 상당히 보기 드문 작품이다.
이처럼 난계국악박물관에서는 국악의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경험해 볼 수 있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옥계폭포’

영동 월이산(月伊山)의 주봉과 서봉의 산등성이 아래 약 20m 높이의 옥계폭포가 있다.
그 옛날 이 폭포의 오색영롱한 폭포수 밑에서 피리를 연주하던 박연 선생이 바위틈에 피어난 난초에 매료되어,
난초의 난(蘭), 흐르는 시내 계(溪)를 써서 자신의 호를 난계(蘭溪)라 지었다고 전해진다.
한편, 폭포에도 남녀 성별이 있다고들 하는데, 옥계 폭포는 여자폭포인 음폭이고
폭포 아래 저수지 한가운데에 남자를 의미하는 양바위가 있어서 음과 양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양바위에 얽힌 재밌는 설화도 있다.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물 한가운데 우뚝 솟은 양바위가
폭포의 경관을 해친다 하여 멀리 옮겨 버렸는데, 그때부터 마을에 희귀한 일들이 벌어졌다고 한다.
젊은 사람이나 늙은 사람 가릴 것 없이 남자들은 객사를 하거나 사고로 죽기 시작했고,
그날 이후 마을 사람들이 모여 양바위를 제자리로 옮겨 놓자 거짓말같이 마을이 평온해졌다는 전설이다.
이런 연유로 아기를 갖기 위한 음기를 듬뿍 받아가고자 하여 불임인 여인들이 이 폭포를 찾기도 한단다.
추운 날씨 탓에 얼어붙은 폭포수 고드름을 뚫고 대차게 터져나오는 물줄기들의 광경은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또한 이곳은 예로부터 난계를 비롯한 많은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던 곳이며,
우거진 노송의 숲과 그늘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루어 ‘충북의 자연환경 명소’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대표 와이너리, 와인코리아

국내 최대의 포도 주산지이자 포도, 와인 특구로 지정돼 있는 영동 주곡리에 신토불이 와인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와이너리(Winery)가 있다.
포도생산부터 와인제조까지 1, 2차 산업을 모두 갖춘 곳을 와이너리라 하는데, 이곳에 자리 잡은 와인코리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와이너리다.
주곡리의 폐교를 개조해 와인공장을 세우고, 일제 강점기 탄약저장고를 개조해 와인저장고를 만들었다.

이곳의 대표 와인은 적포도주 샤토마니다.
‘샤토’는 ‘대저택, 성’이라는 뜻의 불어로 성 주변에 성주의 포도원이 조성된 것에 유래하여 포도원 명칭에 붙인 말이고,
‘마니’는 영동 마니산 산기슭 옛 성터의 수 만 평에 달하는 포도 농장에서 순수 국산 와인을 양조한다는 의미가 담긴 말로
이렇게 탄생한 브랜드가 바로 ‘샤토마니’다.
1층에는 고객들이 수집하는 와인을 관리하고 보관해주는 금고 형태의 개인 와인셀러(저장고)와
화이트와인, 드라이 레드와인, 스위트 레드와인, 복분자 와인을 맛볼 수 있는 시음실이 있다.
지하에는 샤토마니 풍미의 비결인 토굴이 있어서 향긋하게 맛이 깊어져 갈 수 있도록
오크통에 담아 사계절 내내 일정한 온도로 숙성시킨다.
한편 이곳은 레드와인을 부은 따뜻한 물에 족욕 체험까지 해볼 수 있는 시설도 갖추고 있어서
온몸으로 와인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는 오감만족을 경험할 수 있다.

인생의 멋을 알려주는 국악, 폭포, 와인에는 또 다른 깨달음이 있다.
국악기가 흠잡을 데 없이 청아하고 맑은 소리를 내기까지 족히 5년이 걸리며,
폭포는 인고의 세월을 견뎌내면서 골이 깊어지고 점점 더 웅장한 물줄기를 쏟아낸다.
와인 역시 오랜 숙성의 기다림 끝에 한층 풍부해진 깊은 맛을 더한다.
이처럼 우리네 인생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충분히 영글고 무르익을 수 있도록 진득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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