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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06 201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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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내가 하나 되는 곳, 무등산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철쭉의 향연

구름에 둘러싸인 천왕봉은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내고, 다가갈 수 없는 아쉬움을 간직한 서석대는 산언저리에 뿌리를 내렸다. 광주, 담양, 화순에 걸쳐 있는 해발 1,187m의 낮지 않은 산. 무등산(無等山)의 이름에는 없을 무(無), 견줄 등(等), 뫼 산(山) 즉, 그 아름다움이 "이 세상에 이 산과 견줄 만한 산이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국각지의 등산객들이 무등산을 찾는 이유는 무등산의 기암괴석들 때문인데, 이곳은 중생대 화산폭발로 만들어진 대규모 주상절리대가 곳곳에 분포되어 있다. 특히 천왕봉 바로 아래쪽 서석대 부근의 주상절리는 매년 이맘때쯤 주변의 총천연색 봄빛들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푸른 들판과 진분홍빛 철쭉, 그 위로 우뚝 솟은 흙빛 기암괴석이 오묘한 조화로 화려한 봄의 향연이 펼쳐진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주상절리 틈에 피어난 철쭉을 목격할 수 있는데, 가파른 낭떠러지에서 꽃피운 생명의 아름다움이 감탄사를 자아낸다.

무등산의 봄은 바쁘다. 여기 저기 초록빛 새순과 봄꽃을 틔워내느라 바쁘고, 계곡은 겨우내 굳어있던 대지를 녹여 부지런히 물줄기를 흘려보내야 한다. 그리고 긴 겨울을 보내며 한 층 더 다듬어진 기암들도 봄단장에 여념이 없다. 늘 우리에게 베풀기만 하는 자연의 선물, 무등산은 봄에 가장 충만하다.
역사와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옛길

산은 늘 그 자리에 있기 마련이고, 애당초 산 아래에서 정상에 다다르기 위해 정해진 길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같은 발걸음을 내딛으며 길을 닦아 자연스럽게 정상에 오르는 길을 만들었을 것이다. 최근까지 무등산 등반에서 가장 널리 이용되던 길은 산기슭에 자리한 증심사를 기점으로 정상에 오르는 길이었다. 너무 많은 등산객이 이 길을 이용하는 까닭에 자연생태계를 보존하고자 2009년 원효사 쪽에 자연지형을 살린 옛길을 복원해 새로운 등산로를 만들었다.

무등산 옛길 1구간은 광주 도심인 산수동 오거리에서 잣고개, 청풍쉼터, 충장사, 원효봉 너덜겅을 지나 원효사 일주문에 이르는 구간으로, 경사가 나지막한 숲길로 이루어져 있다. 이 구간은 소금을 지게에 지고 잣고개를 넘어 무등산 골골마다 팔던 한 소금장수가 삶에 지쳐 이곳에서 죽고 말았다는 ‘소금장수 길’을 비롯해, ‘김삿갓 길’, ‘장보러가는 길’ 등 설화와 전설이 담긴 길로 조성되어 있어서 옛 사람들의 정취를 느끼며 여유롭게 숲길을 걷기에 좋다.

옛길 2구간은 원효사에서 출발해 서석대에 이르는 구간으로, 오직 오를 수만 있고 내려올 수는 없는 ‘일방통행’ 길이다. 오직 한 사람만이 조용히 자연 속을 거닐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 오감을 열어놓고 걷다보면, 어느새 ‘자연이 곧 내가 되어 있고, 내가 곧 자연이 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한참을 가다보면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하늘이 열리듯 시야가 탁 트이는 ‘중봉’을 만나게 된다. 억새밭으로 유명한 중봉은 가을이 되면 능선 전체을 뒤덮은 억새가 은빛물결을 일으키며 장관을 빚어낸다. 돌아 내려오는 길은 입석대와 장불재를 이용하면 된다.

한편 원효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무등산의 수려한 경치를 좋아하여 이곳에 암자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하늘을 뒤덮을 듯 우거진 대숲 사이를 지나, 높고 긴 계단을 올라야만 절에 들어갈 수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삼국시대의 금동불상을 비롯하여 백제의 토기와 와당, 통일신라시대의 금동불상, 고려자기 및 기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만든 토기불두(土器佛頭) 등 중건공사 과정에서 발굴된 백여 점의 유물과 절 주변에 남아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재(石燈材), 고려시대 3층석탑, 조선 중기의 부도 등은 원효사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또한 계곡 건너편의 의상봉과 윤필봉, 멀리 천왕봉까지 내다보이는 전경은 원효사가 품은 또 다른 보물이다.
소통과 사색의 무돌길

산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정상을 목표지점으로 삼는 사람들도 있지만, 둘레길인 무돌길을 즐기는 사람들도 꽤 많다. 무등산의 옛 이름인 ‘무돌뫼’를 한 바퀴 돌아간다는 뜻의 무돌길은 광주 북구, 담양, 화순, 광주 동구로 이어지는 길로 총 52km, 15개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돌길도 옛길과 마찬가지로 선조들이 마을을 거닐던 길을 발굴해 복구한 것으로, 1910년대에 제작된 조선지형도와 1872년에 제작된 광주 목(牧)지도를 토대로 조성한 것이다. 이 길은 차가 다니는 길이 아닌, 옛날 조상들이 머리나 등에 짐을 지고 걸어서 넘나들었던 길로, 일부는 포장된 도로도 있지만 대부분 아직 옛날 흙길 그대로 남아있다. 한동안 인적이 끊겨서 가시덤불로 뒤덮이거나 비바람에 씻겨 없어진 곳들은 조사를 거쳐 복구해놓았다.

무돌길 15개 구간은 저마다 볼거리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들산재에 올라서서 무등산 정상의 봉우리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싸릿길, 옛날 복조리를 만들기 위해 무등산에서 조릿대를 채취하여 넘나들던 조릿대길, 고려 말 서은 전신민이 은거했던 독수정이 있는 독수정길, ‘백여명의 남정네가 모여서 넘어야 할 만큼 험한 고개’란 뜻을 가진 백남정재길 등 그야말로 스토리텔링으로 가득하다. 무돌길은 그 옛날에는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소통의 길이었고, 오늘날은 옛 정취와 함께 느리게 걸으며 자신과 마주하게 하는 길이다. 그 길을 따라 무등산 둘레를 걷기에 지금 이 봄은 너무 좋은 계절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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