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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06 201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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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 꽃의 향연이 펼쳐진 비슬산(琵瑟山)의 봄
유서 깊은 절, 아름다운 오솔길

대구 달성군과 경북 청도군의 경계를 이루는 비슬산. 산 정상의 바위가 신선이 앉아 비파나 거문고를 타는 형상을 닮았다 하여 ‘비파 비(琵)’, ‘거문고 슬(瑟)’자를 이름으로 삼은 이 산은 산세가 수려하고 숲이 울창해 예부터 많은 사찰들이 산자락 곳곳에 자리 잡았다. 가섭부처가 터를 증명하고 정성천왕이 수도를 봐주었다는 전설도 비슬산에 많은 사찰이 들어서게 만들었다.

현재는 서쪽 대견봉 아래 유가사와 서북쪽의 도성암, 북쪽의 용연사만이 남아있다. 산의 중심에 자리한 유가사는 신라 흥덕왕2년 도성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고려 문종1년에 학변선사, 조선 문종2년에 일행선사, 숙종8년에 도경화상, 영조48년에 낙암선사 등에 의해 중건과 중수가 이루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사찰이 가장 흥했던 고려시대에는 본사를 제외하고 속암이 99개, 딸린 전답이 66만m2에, 거주하는 승려만 3천명이 넘을 만큼 큰 규모를 자랑했다. 사찰 내부에 있는 수많은 불상들이 유가사의 화려했던 시절을 말해준다.

유가사로 이어진 오솔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힌다. 소나무숲을 가로지르는 길은 짙은 솔내음이 진동하고 돌바닥은 긴 세월 수많은 사람들의 걸음에 닳고 닳아 반지르르 윤이 난다. 정적 속에 울리는 산새의 지저귐에 길은 더욱 깊고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 길 끝, 돌계단을 올라 천왕문 너머 마당에 들어서면 우측으로 대웅전이 있다. 대웅전에 들어서면 정면에 석가모니불이, 그 좌우에 각각 문수보살, 보현보살이 모셔있는데 이들 불상은 특이하게도 옥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산수화 같은 암자, 조망이 멋진 바위

유가사에서 1.2km 더 올라가면 영남지역에서는 가장 유서 깊은 선원으로 꼽히는 도성암에 이른다. 도성암은 유가사의 부속암자로,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이 있다. 높은 벼랑 끝에 서 있는 이 탑은 사찰 내의 석재들과 함께 쓰러져 있던 것을 1988년에 복원한 것이다. 일반적인 탑과는 달리 절벽의 높은 바위를 바닥돌 삼아 그 위로 기단과 탑신을 올려놓았으며, 기단과 탑신의 기둥모양 조각 외에는 거의 꾸밈새가 없는 모습이 소박하다. 오랜 세월 무너져 있었음에도 위엄을 잃지 않고 주변 산세를 다스리고 있는 듯한 당당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도성암을 통과해 5분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도통바위가 보인다. 삼국유사에는 도성국사가 이곳 굴에 살면서 도를 통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때문에 도통바위라 불리게 됐다. 도성국사는 평소 도통바위 위에서 좌선하였는데, 하루는 바위 사이로 빠져 공중으로 날아가서 행방을 감추었다고 한다.

도통바위는 이러한 역사적인 의미가 아니더라도 그 아름다운 풍광만으로도 비슬산 최고의 바위라 할 수 있다. 이 바위에서 바라보면 비슬산 서쪽 산세가 한눈에 담기고, 더 멀리 시선을 주면 산 아래로 달성에서 창녕으로 이어지는 넓디넓은 들판과 그 사이를 가르며 유유히 흘러가는 낙동강이 그려진다. 이번에는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면 천왕봉에서 월광봉, 조화봉을 거쳐 관기봉까지 기운차게 뻗은 비슬지맥이 펼쳐져 시선을 휘어잡는다.
진달래꽃 만발하는 산마루

도통바위부터는 가파른 비탈길이 이어지고, 20분 정도 더 올라가면 비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해발 1,084m)에 다다른다. 이 부근에서는 정상의 암봉이 호방한 산세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바로 옆의 협곡을 사이에 두고 깎아 세워놓은 듯한 낭떠러지가 병풍처럼 펼쳐져 감탄을 자아낸다. 전망대에 오르면 협곡 사이에 높이 솟은 조화봉(해발 1,034m)을 비롯해 988개의 암봉이 들쭉날쭉 포개진 장쾌한 산세를 감상할 수 있다.

사시사철 많은 등산객이 이곳을 찾지만 특히나 매년 이맘때면 상춘객으로 더욱 붐빈다. 천왕봉 능선을 분홍빛으로 수놓는 진달래군락지 때문이다. 이 능선길의 남서쪽과 북동 사면 100만m2는 4월 중순부터 진달래로 덮이기 시작해 4월말 절정에 이른다. 진달래군락지로는 전국 최대 규모로, 하늘과 맞닿은 광활한 평원에 펼쳐진 분홍빛 물결은 천상화원을 연상케 한다.

정상 부근과 더불어 988봉 아래 산자락, 대견사 주변 산자락 등 크게 세 군데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중 대견사 북쪽 산자락은 가장 넓은 진달래 군락지이며, 그중에서 988봉 산자락은 가장 고은 진달래가 밀집되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또한 이곳 천왕봉은 억새군락으로도 유명하다. 가을이면 청도 쪽 긴 능선을 따라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들이 금빛 물결을 이룬다.

하산할 때는 마령제, 대견사를 지나 비슬산자연휴양림 쪽으로 내려오는 경로가 일반적이다. 자연휴양림 부근에는 2㎞에 걸쳐 거대한 바위덩어리들이 밀집돼 있는 암괴류를 만날 수 있다. 스님바위, 코끼리바위, 형제바위 등 재미있는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모양의 커다란 화강암 덩어리들이 대규모로 쌓여 있는 특이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눈이 호사를 누렸으니 산행을 하느라 허기진 배를 채울 차례. 비슬산 주변의 먹거리로는 현풍면 하리 도동마을에 있는 ‘원조 현풍 박소선 할매집곰탕’이 유명하다. 곰탕은 현풍의 향토음식으로 전라도 나주곰탕, 황해도 해주곰탕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곰탕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국물도 구수하고 잘 삶아진 살코기가 부드럽고 담백해 입에 쩍쩍 붙는다. 깍두기, 무장아찌, 풋고추 등 깔끔한 반찬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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