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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06 201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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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부심과 겸손함으로 맡은바 책임을 다하는 ETRI인이 되기를…

Q. 먼저 ETRI 임직원들에게 인사말씀을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ETRI를 떠난 지도 벌써 2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당시 저와 함께 근무했었던 분들 중에 현재까지 ETRI에 계신 분들은 아마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마음에 ETRI는 항상 고향처럼 다정하고 애틋합니다. 제게 있어서 ETRI 재직시절은 긍지를 느끼며 열심히 연구했던 보람된 시절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ETRI에 고마운 마음도 큽니다. 저는 ETRI의 덕을 참 많이 봤습니다. 많은 기회들이 주어졌고, 제 역량을 성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ETRI 웹진을 받아 보면서 ETRI에 근무하던 시절이 생각나곤 했는데, 이렇게 제게도 웹진을 통해 인사를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무척 반갑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Q. 대학에서는 주로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 말씀해주세요.

1992년 아주대로 옮겨와서 지금까지 22년간 학생들을 지도하고 BK21사업단장, 정보통신대학원장, 정보통신전문대학원장, 전산소장 등을 맡아 나름대로 바쁘게 지냈습니다. 사실 대학의 교육은 취업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보니, 학술적인 부분이나 깊이 있는 연구보다는 실제 개발에 임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들어주는 데 힘썼습니다. 즉 연구개발 프로세스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제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ETRI에 대해 잘 알고 있고 ETRI에서 일하고 싶어 하더군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동문으로서 자랑스럽고 뿌듯한 마음입니다.

Q. ETRI 재직시절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는다면, 타이콤을 기술적으로 완성시킨 일입니다. 타이콤은 ETRI를 주축으로 삼성전자, 금성사(現 LG전자), 현대전자 등이 공동으로 개발해 상용화한 국산 주전산기입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주전산기를 국산화하겠다는 계획은 참으로 위험한 배팅이었습니다. 우리 손으로 해보자, 믿고 가보자는 자신감 외에는 기술개발 경험도, 연구에 필요한 제반 환경도 부족했습니다. 당시 엄청난 인원이 투입되었고, 모두들 밤샘도 마다않고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어느 날은 연구팀이 일을 하다가 새벽 2시에 집에 가려고 나와 보니, 연구소가 온통 흰 눈으로 덮여있더군요. 밤이 새는 줄도, 눈이 오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연구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열정을 쏟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연구원 및 사업책임자들께서 고생한 덕분에 타이콤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이와 같은 훌륭한 연구원들과 열정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을 일생의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덕분에 참여 연구원들을 대표해 상을 받은 적도 있는데, 이는 모두에게 갚아야 할 빚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함께 고생했던 많은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Q. ETRI에 바라는 점, 그리고 ETRI 임직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남겨주세요.

국내 정보통신 분야 대학교수 중 약 1/3이 ETRI 출신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대학에 있다가 ETRI로 가는 경우는 거의 드문 일이지요. 이유가 돈 문제만은 아닐 것입니다. 인재를 양성하고 배출하는 것도 ETRI의 임무 중 하나지만 훌륭한 인재들이 일하고 싶어하고, 동시에 떠나기 싫어하는 연구소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ETRI의 위상을 높여 세계적인 연구기관으로 우뚝 서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술에 대비하는 기반연구를 잘 해야 합니다. 또한 단기적 외부 흐름에 흔들리지 않고, 지속적인 연구로 성공의 가능성을 보일 수 있는 뚝심도 보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개발 역량을 기르기 위해서는 기획부터 개발, 상용화까지 연구개발의 전주기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원들에게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가끔 제게 맡겨진 자리와 그동안 누려온 것들이 과연 내가 잘해서 얻은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누군가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제대로 잘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지요. 결국은 겸손하게 열심히 하는 방법밖에는 다른 답이 없더군요. 이러한 차원에서 ETRI 임직원들도 매사에 겸손한 마음으로, 열심히 맡겨진 책임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Q. 앞으로의 계획과 바람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이제 내년이면 저도 정년퇴임을 하게 됩니다. 연륜과 나이에 걸맞는 퇴임 후의 삶이 무엇일까, 나름대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는 채근담의 다음 구절을 좋아합니다.
‘하루 해가 저물어도 노을은 오히려 아름답고 / 한 해가 곧 저물려 해도 귤 향기가 더욱 향기롭다. / 한 생애의 말로인 만년은 백배로 정신을 가다듬을 때이다.(故末路晩年更宜精神百倍)’
아직 뚜렷한 계획은 없지만 과학보다는 인문학 분야의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제 경험을 활용해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더 고민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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