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 contents

Place

Vol.232

프랑스 파리,
버려진 건축물들의 쓰임을 찾다

1960~70년대의 파리는 도심의 인구 포화상태로 몸살이었다.
이를 분산시키고자 다수의 시설을 외곽으로 이전했는데, 이 과정에서 도심엔 빈 건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빈 건물들의 재건축 공사로 인해 기존의 건물들이 사라지기 시작하자 파리 시민들은 건물들을 재활용해 보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렇게 건축물을 재활용하기 시작한 파리는 지금까지도 그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철길의 변신, 프롬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ee)

파리의 동남쪽에 위치한 12구. 이곳에는 프롬나드 플랑테가 있다. ‘식물이 있는 산책길’이라는 뜻으로 여느 산책길과는 다르다. 버려진 철길을 재활용해 만들어진 산책로다. 원래 프롬나드 플랑테는 1859년에 만들어진 4.5km 길이의 고가철도였다. 바스티유 지역과 벵센 지역을 잇는 철도였으나, 1969년 지역고속전철망을 도입하면서 운행이 중단된 채로 방치되었다. 4.5km의 길이의 고가철도를 철거하기엔 큰 예산이 들고, 고가철도 재활용에 대한 선례가 없어 마땅한 계획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르 비아딕 데자르(Le Viaduc des Arts)의 모습

고가철도가 개선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이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랑수아 미테랑은 ‘그랑 프로제(Grands Project)’를 통해 문화예술시설을 확충하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에 속해있던 바스티유 국립 오페라 극장 건립 부지에 고가철도가 포함되어 있었고, 이를 계기로 고가철도의 재활용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로소 철도가 지나가는 부지는 정원과 산책로로, 철도를 받치고 있던 아치형 기둥은 상점이 들어설 수 있는 ‘르 비아딕 데자르(Le Viaduc des Arts)’로 재탄생했다.

일직선으로 길게 이어지는 공중 산책로는 다양한 식물들과 연못으로 구성해 시민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아치형 기둥 안에 자리 잡은 상점들에는, 수공예 예술가의 아틀리에와 카페, 갤러리, 레스토랑 등이 있다. 방치하여 슬럼화하던 고가철도가 주민들이 애용하는 일상의 건축물이 된 것이다.

출처 : www.shutterstock.com

기차역, 오르세 미술관(Musee d'Orsay)이 되다

루브르 박물관과 퐁피두 센터와 함께 파리의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오르세 미술관. 이곳은 1939년까지 철도역 겸 호텔로 사용했다. 이후 새로 개발되는 기관차들이 점차 길어져 기존 오르세 역 플랫폼의 규격에 맞지 않았고, 오르세 역은 영업을 중단하게 되었다. 이후 오르세 역을 제2차 세계대전 중엔 우편센터로, 전쟁 후에는 포로수용소, 영화 세트장 등으로 사용했으나 1973년, 호텔영업을 마지막으로 철거될 위기에 처한다.

이후, ACT 건축그룹에서 오르세 역을 재활용하여 1986년 미술관으로 정식 개관을 한다. 오르세 미술관은 기차역의 정체성을 그대로 둔 채, 디자인적 요소로 활용했다. 기존에 있던 유리 돔과 주요 뼈대를 그대로 살렸다. 또한 선로로 사용하던 공간은 중앙 통로로 변신했으며, 1층에 대합실로 사용하던 중앙 공간 양옆으로 미술품들을 전시했다. 미술관 중앙 통로와 외관에 있는 커다란 시계는 이곳이 기차역으로 쓰였음을 알려주는 요소이자, 오르세미술관만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출처 : www.shutterstock.com

오르세미술관에는 주로 1848년부터 1914년까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고흐를 비롯한 고갱과 쇠라 등 인상주의나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외에도 회화, 조각, 사진, 가구 등 폭넓은 분야의 예술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철거되어 사라질 뻔한 오르세 역은 이제 매년 300만여 명이 방문하는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출처 : www.shutterstock.com

우편물 처리장의 재발견, 알르 파졸(Halle Pajol)

알르 파졸은 파리의 북동쪽인 18구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복합 문화시설이다. 알르 파졸은 과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철도노선의 확장으로 인해 생긴 우편물 처리장이었다. 철도 화물선이 생기고, 이에 물품을 적재할 공간이 필요해짐에 따라 생긴 것이다. 1926년에 지어져 1990년대 초반까지 ‘파졸 홀(Pajol Hall)’로 부르며 사용하던 이 공간은 SNCF(프랑스 국유철도)가 인수한 후, 방치되었다.

이후 파리시가 파졸 홀 일대의 지역을 구매하고, 600채의 주택을 새로 짓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주택보다는 공원과 공공시설의 필요를 느꼈던 지역주민들의 반발로 파리시는 파졸 홀 건물을 재활용하여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바꾸기로 한다. 프로젝트를 맡은 주르다(Jourda)건축소는 파졸 홀의 기존 자재물을 최대한 살려서 폐기물을 최소화하고 나무를 비롯한 친환경 소재를 사용해 리모델링을 진행했다.

리모델링 된 알르 파졸은 유스호스텔, 상점, 도서관뿐 아니라 공원이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건물 옥상에는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해 유스호스텔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지열 설비 시설도 갖춰 건물이 소비하는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여 프랑스 공공 전력회사에 판매하고 있다.

새롭게 재활용된 건물들은 파리 시민들의 새로운 문화생활 공간으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환경을 보호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버려진 건축물을 다시 재활용하여 사용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파리가 보여준 다양한 건축물들이 증명하고 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