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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20

바르셀로나,
디지털트윈으로 도시민의 행복을 디자인하다

바르셀로나가 추구하는 스마트시티는 우리가 상상하는 방향과 조금 다르다.
자율주행차가 거리를 누비고 드론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미래형 도시만을 상상한다면 말이다.
디지털트윈이라는 최첨단 스마트기술을 통해 도로를, 공간을, 삶을 시민들에게 돌려준 바르셀로나,
그곳의 사례를 찾아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시민의 스마트시티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알아보았다.

디지털 트윈으로 도시를 설계하다

마레노스트럼 슈퍼컴퓨터
(출처 : BearFotos / www.shutterstock.com)

도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복잡계다. 정책의 작은 변화 하나로도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그 결과 엄청난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도시를 계획할 때는 기발한 아이디어나 첨단 기술만이 아니라 그것을 운영해갈 시스템과 그 여파까지 미리 계획되어야 한다. 바르셀로나는 이런 점에서 이미 다른 도시와는 차별화된 스마트시티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핵심은 디지털트윈 기술에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나 공대 토레 지로나(Torre Girona) 예배당에는 세계가 주목하는 슈퍼컴퓨터, 마레노스트럼(MareNostrum)이 있다. 마레노스트럼 슈퍼컴퓨터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데이터 처리 장치로 바르셀로나 스마트시티 정책의 디지털트윈 기술을 담당·구현하고 있다. 디지털트윈은 가상 세계를 통해 도시 계획 프로젝트를 사전 시뮬레이션하고 시범 운영해보는 기술이다. 설계 단계부터 풍부한 데이터를 모으고 그 데이터를 미리 분석해 행여 일어날지도 모르는 미래의 부정적 영향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디지털트윈 기술이 만들어낸 바르셀로나의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는 어떤 모습일까?

슈퍼컴퓨터가 제안한 슈퍼블록 시티

슈퍼블록 내부, 원래라면 차량이 다녔어야 할 도로 위에 놀이터가 조성되었다.
(출처 : Stanislavskyi / www.shutterstock.com)

바르셀로나의 대표적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는 ‘슈퍼블록’이다. 이 프로젝트는 계획 단계에서 데이터 모델링까지 슈퍼컴퓨터의 지원을 받았다. 현재까지 6개 정도 조성되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슈퍼블록은 흔히들 상상하는 스마트시티와 확연히 다르다. 더 빠르고 더 효율적인 삶이 아니라 더 쾌적하고 편안한 삶, 공동체가 살아나는 도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이야기다.

한가지 예를 들어볼까? 바르셀로나의 슈퍼블록 중 하나인 산마르티 지구 포블레노 지역으로 가보자. 이곳에는 사거리 중앙에 떡 하니 놓인 벤치를 볼 수 있다. 차가 씽씽 달려야 할 도로 한가운데 놓인 어린이 놀이터와 쉼터. 스마트 시티라고 하면 대번에 첨단 도시만을 상상하도록 교육받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경하고 해석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슈퍼블록은 바르셀로나시가 도시 중심부의 자동차 숫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안한 디자인 콘셉트다. 113.3 × 113.3 m의 네모 반듯한 주거, 상업 블록 9개를 묶은 이 공간에는 자전거와 일부 허가받은 차량만 출입할 수 있다. 거주민이 소유한 차나 응급차, 쓰레기 수거차 등 공공 서비스 차량은 예외다. 그러나 이 차량들 조차도 도심 내부에서는 시속 10 km의 속도로 일방통행해야 한다. 주차는 모두 지하로 내려보냈다.

차가 사라진 도로, 어색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곳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먼저 시민들이 쉴 수 있는 벤치와 운동기구, 놀이터들이 돌아왔다. 푸른 나무와 꽃과 쾌적한 공기가 돌아왔다. 그리고 마침내는 사람들이 돌아왔다. 돌아온 사람들은 그 블록 안에서 차에 위협받지 않고 걷고 놀고 산책하고 어울려 담소를 나누게 되었다. 공동체가 살아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동은? 바르셀로나는 일단 교통 시스템을 통합했다. 공공버스와 지하철 트램을 하나로 묶어 탑승, 환승을 자유롭게 했다. 이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스마트 엘리베이터(바르셀로나 9호선 공항철도 한정)를 도입했고 버스 이동 경로도 조정하여 환승 시간도 대폭 줄였다. 자전거 도로를 확장하여 거주하는 모든 사람이 원하는 곳에 신속하게 가닿을 수 있도록 했다. 슈퍼컴퓨터의 디지털트윈 기술을 통해 완성해낸 교통 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 탓일까? 최근 바르셀로나의 주요 교통수단은 도보와 자전거가 되었고 그 결과 만성적이었던 환경 오염 문제에 대한 돌파구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슈퍼 블록 프로젝트를 추진한 후 블록 내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42 %, 미세먼지 오염은 38 % 이상 감소했다고도 한다.

물론 슈퍼블록이 도시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다. 슈퍼블록 내의 공기 질은 확실히 개선되었지만 주변 도로는 오히려 오염이 심각해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교통 체증도 더욱 심각해졌다. 이런 부작용들 또한 앞으로 디지털 트윈 기술로 풀어가야 할 문제들이다. 현재는 바르셀로나 시정부도 슈퍼블록에 추가할만한 다른 정책을 찾고 있다.

스마트시티가 가야 할 방향

바르셀로나 전경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디지털트윈 기술뿐 아니라 스마트시티 정책의 방향이다. 바르셀로나의 스마트시티 정책은 더 빠르고 효율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시키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 여기서 현재 우리의 스마트시티와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스마트 시티에도 노인과 장애인, 어린이와 사회적 약자가 함께 설 자리가 있는가, 그들이 한가롭게 걷고 놀고 산책하고 담소를 나눌 공간이 있는가,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최첨단 기술들이 개발됨에 따라 도시는 갈수록 스마트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전에 우리는 옳은 방향을 세워야 한다. 어떤 스마트 시티를 만들 것인지는 그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가치관에 달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바르셀로나의 디지털 트윈 기술과 슈퍼블록 프로젝트는 참고할만한 시사점이 분명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