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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 TRIP

지구의 기억, 시간의 기록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

고생대는 짧은 기간 동안 다채로운 생물군이 등장한 시대였다.
생물의 개체가 현저히 적은 선캄브리아 시대에서, 캄브리아기로 넘어오며 생명의 빅뱅이 일어났다.
이후, 몇 번의 멸종과 탄생을 거치며 인류가 나타나기에 이른다. 그렇게 탄생한 인류가,
지금의 모습을 이루기까지의 긴 흔적을 더듬으러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을 찾았다.

고생대의 시간이 스며있는 곳

고생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생물에는 무엇이 있을까. 바로 삼엽충이다. 수명이 긴 장수 종으로, 얕은 바다에서 서식했던 삼엽충은 그 수가 월등히 많아 고생대 절지 동물류 중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이러한 삼엽충의 화석이 발견되는 지역은 중국의 동남부와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유럽 기타 등지이며, 한반도에서는 태백이 주요 발견지다.

때문에, 태백 지역 일대는 ‘전기고생대 지층 및 하식지형’으로 천연기념물 제417호로 지정됐다. 고생대의 따뜻한 바다 환경에서 퇴적된 지층이 널리 분포된 지역이라는 뜻이다. 더불어, 국내 유일하게 전기고생대 지질이 연속적으로 발견되고, 중기고생대 부정합면을 관찰할 수 있어 학계에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삼엽충을 비롯하여 필석류, 연체동물 등 많은 화석이 산출되어 국내 고생대 화석의 보고라 일컫는다.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은 바로 이 고생대 지층 위에 건립됐다. 고생대 지층 위에, 고생대를 주제로 한 박물관은 이곳이 유일하다. 까닭에, 이곳에서는 고생대 자연환경과 그곳에 살았던 생물역사를 추적할 수 있는 다양한 화석 및 모형을 관람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야외체험도 가능하다. 근처 하천에서 화석과 퇴적구조를 직접 관찰하며 1억5천만 전의 지구를 흥미진진하게 체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고생대자연사박물관에서는 역사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생명의 탄생을 시작으로 선캄브리아 시대를 거쳐 고생대와 중생대, 그리고 신생대에 이르는 과정이 층별로 잘 짜여 있다. 그 방식도 다양하다. 단순히 나열된 정보를 습득하고, 눈으로만 관람하는 것이 아닌, 직접 몸을 활용하여 즐길 수 있는 콘텐츠나 현장감을 살린 VR(virtual reality) 체험관을 구성하는 등 다채롭게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해 놓았다. 그래서일까, 박물관이라는 학술적 공간 특유의 경직되고 무거운 분위기보다는 활달하고 쾌활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곳에 방문한 다수가 아이를 동반한 가족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지층과 화석이 말하는 것들

1층 전시실의 주제는 화석이다. 지층에 새겨진 역사나 화석의 발굴 과정, 현장 등을 다룬다. 지층은 시간의 퇴적물이다. 오랜 시간 거듭 쌓이고 쌓여 단단한 층을 이루고, 몇 번의 지각 변동을 거쳐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게 모습을 비춘 지층에는 당시의 시간이 박제된 듯 살아가던 생물의 화석과 환경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발견된 지층의 시대에 어느 생물이, 어떠한 방식으로 생활했으며, 어떻게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화석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보통 생물의 사체는 다른 동물에게 먹혀 훼손되거나 미생물에 의해 빠르게 분해되어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생물의 사체 위로 빠르게 흙이 덮인 뒤, 훼손되지 않을 만큼의 열과 압력을 버티며 화석화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극히 일부의 종만이 겨우 화석으로 살아남는 것이다. 물론, 오랜 시간을 견뎌 탄생한 화석만큼, 발굴하는 과정도 여간 쉽지 않다. 1층 전시관에서는 화석의 생성 과정과 함께 발굴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데, 땅속의 화석이 박물관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단계별로 관찰하고, 탁본을 만들거나 붓으로 이물질 제거하는 등의 과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꾸렸다.

2층으로 가면, 본격적으로 선캄브리아 시대 및 고생대의 생물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관 입구를 시작으로 지질학적 시대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먼저, 지구의 생성 과정과 생물이 출현하게 된 환경 및 배경, 그 변화에 따른 진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시각적인 특성을 살려 구성해 놓았다. 사실적으로 제작된 표본 역시 아이들의 시선을 끈다. 어디까지나 막연하게 상상하던 생물을 눈앞에서 직접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으니, 아이들로서는 신기할 따름이다. 왜 이렇게 생겼는지, 이름은 무엇인지 소개된 설명란을 읽으며 이것저것 묻는다. 호기심은 아이들이 세상을 접하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이니까.

마지막 전시관인 3층에선 후기 고생대와 함께 중생대, 신생대까지 이르는 동식물을 만날 수 있다. 3층에 들어서면, 제법 익숙한 형태의 생물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바로, 공룡이다. 아이들은 몇몇 공룡의 모습을 보곤 반갑게 알은체한다. 이름도 술술 읊는다. 공룡은 아이들에게 여전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미지한 생물이자 익숙하고 반가운 존재다. 육중한 골격을 자랑하는 공룡의 표본과 마주하고 넋을 잃은 아이도 보이고, 방금 발굴된 듯한 공룡의 몇몇 골격을 보곤 공룡이 이렇게 거대했는지 부모님께 묻는 아이도 여럿 있다. 전시를 관리하는 중 아이들의 감탄과 말소리가 제일 커지는 순간이다.

제6의 멸종, 지구온난화

긴 시간, 눈으로 곳곳을 감상하다 곧 마지막 전시관에 이른다. 이곳에선 지구온난화를 다룬다. 지구온난화가 왜 갑작스레 등장하나 싶지만, 그렇지 않다. 일련의 역사가 끝없는 탄생과 죽음의 반복이듯, 지금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위기가 바로 지구온난화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급격한 기후 변화로 인하여 생물의 개체 수가 줄어가고 있다. 제6의 멸종은 꼭 허무맹랑한 소리만은 아니다. 거듭된 탄생과 죽음을 거쳐 마련된 역사는 이제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현재의 이야기란 뜻이다.

많은 박물관이 그저 전시관의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은 달랐다. 주기적인 기획 전시와 유지, 교육이 함께 어우러져 박물관 본연의 기능과 역할에 집중한다. 봄기운이 슬금슬금 올라오는 요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즐기고 아이와 함께 좋은 추억을 쌓기 위해서라도 태백으로 향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