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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94 · October 20 · 2017 · Korean

Focus  ______  박상년 성과홍보실 책임기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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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든 무대 뒤 주인공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곧 폐간 될 잡지사에서 포토에디터로 근무하는 주인공이 사라진 마지막 호 표지의 사진필름을 찾기 위한 여정을 담았다. 그런데 그가 그토록 애타게 찾은 마지막 호 표지 사진은 열심히 일하는 직원인 주인공 자신의 얼굴이었다. 오늘은 화려한 무대 뒤에 선 또 다른 주인공을 소개한다. ETRI의 수많은 동료들을 촬영해 사진 속 주인공으로 만드는 숨은 주역, 박상년 책임기술원과의 데이트를 시작하며.

카메라를 들기까지

박 책임은 처음부터 사진촬영전문가로 입사한 것이 아니다. 당시 ETRI 내에는 전문 사진촬영 담당자 없이 홍보실 직원들이 돌아가며 사진을 찍었는데, 평소 그가 사진을 좀 찍는다는 것을 아는 동료의 추천으로 그 역시 카메라를 들게 됐다. 그가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은 가족과 관계있다. 흥미롭게도 그의 남자형제 모두 사진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다. 그의 형제들은 각각 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한다. 처음에는 큰형이 사진으로 일을 시작했고, 동생들은 형을 도와주기 위해 사진에 손을 댔다가 어느새 모두 이 길을 업으로 삼게 됐다. 그의 사진업무의 시작은 현미경으로 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현미경 위에 카메라가 장착된 형태로 주로 반도체칩을 촬영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를 위해 필요한 반도체를 화공약품으로 주변을 녹여서 칩만 남기는 과정을 거친다. 비록 위험천만한 일이었지만 촬영 후 인화한 수많은 각각의 사진들을 이어 붙여 방만 한 크기로 엮은 사진은 연구원들에게 연구 참고자료가 됐다. 당시 기술이 없던 우리나라 연구원들은 부품의 실사를 보고 공부해야 했는데, 고가의 반도체칩을 일일이 돌려볼 수 없었기에 이런 사진들은 자료의 역할을 했다. 이후 그는 보도사진을 전문적으로 담당하게 된다. 당시 홍보 담당자들은 언론 홍보를 위해서 보도자료와 사진을 언론사에 직접 방문해 전달하면서 요청하였기에 출연연구소별로 사진담당이 필요한 시기였다. 한 마디로 언론사에 보도해달라고 직접 세일즈를 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보니 반도체 사진담당에서 연구원의 사진 담당으로 본격적인 사진 업무를 시작하게 돼, 그는 현재까지 ETRI 내 유일무이한 사진촬영전문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때 그 시절, 영화 같던 ETRI 속 순간포착

박 책임은 연구원 원년멤버의 다음 세대라고 할 수 있다. 79년도에 설립된 ETRI의 전신인 남산센터가 82년도에 대전으로 이전하고, 85년도에 한국전자기술연구소와 전자통신연구소가 통합돼 한국전자통신연구소의 모습을 갖추던 시기에, 그는 83년 구미의 한국전자기술연구소에 입소한 후, 87년도에 대덕연구단지로 왔다. 그래서 그는 초창기 때부터 ETRI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한 ETRI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산증인답게 그는 ETRI 대표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TDX, DRAM, 행정전산망 주전산기, CDMA 등 많은 결과물 사진을 촬영했다. 작년에 발간한 ETRI 40년사의 사진 중 앞의 10년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가 촬영한 사진이라고 하니 그의 긍지심은 짐작할 만하다. 많은 순간 중 그의 머릿속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96년 4월, 당시 국무총리인 이수성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ETRI에서 개최된 CDMA개통식 장면’이다. 이수성 국무총리가 비서와 최초로 통화하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 우리나라 통신역사를 이야기 할 때마다 한 장면을 장식하니, 사진을 촬영한 박 책임은 남다른 기분을 느낀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처럼 그는 수많은 기술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 및 수많은 유명인사들과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카메라와 색소폰

그가 카메라를 들었던 시대는 사진자격증도 없고 사진학과는 소수의 교육기관에 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는 독학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사진에 관한 책을 많이 읽으며 어떻게 촬영하면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는지를 배웠다. 또한 사보기자협회에 등록된 기관의 사보 담당자들과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인물사진이 아닌 보도자료용 사진을 촬영해야 하므로 보도자료 사진촬영기법 교육프로그램에 참가하여 언론사 사진부장의 생생한 강의에서 배운 경험 역시 든든한 자양분이 됐다. 무엇보다 그는 현장에서 그만의 방법을 연구했다. 연구원의 보도사진은 연구개발품이 주가 되어야 하지만, ETRI의 경우 크기가 작은 성과물도 많고, 보여줄 것이 부족한 소프트웨어를 촬영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는 연출사진을 고민했다. 연구원들에게 연출을 요청해 사진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것이다. 더불어 그는 늦게나마 학부에서 디지털디자인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정부출연연구소의 홍보영상과 기업의 홍보영상을 분석하는 논문을 쓰면서 시각을 넓혔다. 요즘 그는 카메라 대신 색소폰을 드는 시간이 많아졌다. 영상 예술인 카메라에 이어 소리의 예술인 악기까지 손을 댄 것이다. 그는 카메라와 색소폰이 무겁다는 것 외의 가장 큰 공통점은 ‘배우면 배울수록, 욕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어렵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책임이 사진을 찍어 독자에게 기쁨을 주듯, 음악으로 청중에게 기쁨을 줄 것을 응원한다.

모두가 함께 ETRI 100년사를 발간할 수 있기를

점점 영상이 중요해지는 시대다. 더불어 스토리가 있는 사진이 각광을 받고 있다. 연구원 역시 성과물만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노고가 숨어있는지 연구 비화를 보여줄 수 있는 사진 한 장을 이용하면 대중에게 더 큰 인상을 남길 수 있다. 그는 빠른 시일 내에 모든 사진의 디지털 작업을 통해 직원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길 바라는 소망이 있다. 지금은 성과홍보실 서버에 사진을 저장 및 관리하고, 에트리웨어 행정지원 맵의 포토 파일에 사진을 올리는 공간을 마련했지만, 연구원 내 모든 이가 필요한 사진을 검색해 사용할 수 있는 별도의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는 일명 ETRI 내부용 인스타그램이 존재하기를 기원한다. ETRI는 41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연구결과물에 대한 사진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연구원사를 발간할 때마다 과거 연구결과물의 실체와 사진 모두가 없는 경우가 많다보니 ETRI역사를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몸이 하나인 그가 모든 사진을 다 촬영할 수는 없기에 동료들의 참여가 절실하다. 좋은 사진을 건지고 싶어도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오랜 시간 업무를 하며 체득했다. 그래서 그는 연구자들이 꼭 성능 좋은 카메라가 아니어도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연구하면서 일어나는 장면을 촬영하여 공유사진용 서버에 저장, 관리하기를 요청한다. 연구결과의 성공, 실패를 떠나 역사가 자연스럽게 기록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박 책임의 바람대로 ETRI 동료 모두가 함께 힘을 모아 작품 같은 백년사를 발간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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