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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vol.30 201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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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노래하는 음유시인, 불멸의 가수, 금세기 최고의 가수, 노래꾼, 기타리스트, 영원한 가객(歌客).
故김광석은 이런 수식어들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이맘 때, 진솔한 감정들을 소탈하고 꾸밈없이 부른 그의 노래들이 더 생각난다.

2015년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거리마당 상)을 수상한 ‘대구 김광석 다시그리기길’을 찾아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이 흐를수록 그리워지는 그와 함께 걸었다.

낭만과 사랑을 먹고 살았던 청춘들

‘김광석 다시그리기길’은 국내 최초로 대중음악인의 이름을 딴 창작의 거리다.
故김광석은 1964년 1월 22일 대구시 대봉동에서 태어나 5살 때까지 이 동네에 살았다.
이런 연유로 2008년에 문화체육관광부의 문전성시 사업 중 방천시장 활성화를 위해 故김광석의 삶과 음악을 스토리텔링한 벽화 거리가 조성됐다.
350m 길을 따라 놓인 담벼락에는 100여 점의 작품들이 매년 새로운 벽화들로 채워진다고 한다.

김광석은 스무 살이 되던 해, 1984년에 김민기의 음반에 참여하면서 데뷔해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 ‘동물원’의 보컬로 활동하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동물원 활동을 그만둔 후, 통기타 가수로 1991년부터 꾸준히 소극장을 중심으로 공연을 했다.
한국모던포크의 계승자로 각광받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펼쳐나가던 중 거짓말처럼 그의 나이 서른 즈음인 1996년 1월 6일에 생을 마감했다.

미처 다하지 못한 그의 노래는 인생의 축소판

방천시장 골목 어귀에 가까워질수록 귓가에 김광석의 명곡들이 또렷이 들려왔다.
김광석길 입구의 ‘골목방송스튜디오’에서 사람들의 신청을 받아 틀어주는 그의 노래들이 거리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귀가 아닌 가슴으로 듣게 되는 노래들을 들으며, 지역 예술가들이 주옥같은 노래들에 영감을 얻어 창작한 작품들을 감상했다.

집 떠나와 열차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가슴 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 이등병의 편지 -

이 노래는 김광석이 군 복무 중에 죽음을 맞이한 친형을 그리워하며 부른 곡이다. 김광석은 입대하는 젊은이들의 심정을 담담하게 노래했다.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조금씩 잊혀져간다…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 서른 즈음에 -

‘서른 즈음에’는 음악 평론가 42인이 뽑은 90년대 이후 음악 중 가장 아름다운 노랫말 1위를 차지한 곡이다.
그만큼 그의 노래는 인생의 문턱에서 겪는 방황의 깊이를 헤아린 곡들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는 울림이 크다.

사랑했지만…그대를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설 수 없어/
지친 그대 곁에 머물고 싶지만 떠날 수 밖에/ 그대를 사랑했지만…
- 사랑했지만 -

김광석은 70대 할머니가 레코드점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듣고 소녀 감정을 되찾았다는 말을 전해 듣게 됐다.
그 후, 그는 이 노래를 더 열심히 잘 부르려고 했다고 한다.

나와 너를 구속하고 쉽게 긍정지은 일들/ 나와 너를 얽매이고 쉽게 인정했던 일들/
나와 너를 부딪치고 서로가 아끼며 보듬을 우리/ 따뜻한 눈으로 마주할 우리 사랑으로 자유롭게
- 자유롭게 -

김광석은 바쁜 공연 일정 때문에 딸과 함께 지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딸을 위해 이 노래를 만들었다.

내가 너의 아픔을 만져줄 수 있다면/ 이름 없는 들의 꽃이 되어도 좋겠네/ 음~ 눈물이 고인 너의 눈 속에 슬픈 춤으로 흔들리겠네/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내 가난한 살과 영혼을 모두 주고 싶네
- 내 사람이여 -

김광석이 이런 사랑을 한 번 해봤으면 하는 자신의 바람을 담아 부른 곡이다.
그는 물질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측면에서 잘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막내아들 대학시험 뜬 눈으로 지내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

이 노래는 블루스 기타리스트 김목경이 영국 유학시절 클럽 앞 노부부를 보고 만든 곡인데
김광석이 이 곡을 리메이크해 부르면서 유명해져 더 큰 사랑을 받았다.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잊혀져 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

지나간 시간은 추억 속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긴 밤을 또 잊지 못해 새울까/
창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보다 커진 내방 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

김광석길 옆 방천시장

거리를 한 바퀴 돌고 골목 옆 방천시장으로 향했다.
아기자기한 소품 가게들과 카페들이 전통 시장 점포들과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방천시장은 해방 직후 일본과 만주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장사를 하면서 형성됐다.
그 후,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전통 시장의 자리가 위태로워지자
2009년에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 사업 등이 이 곳 시장에 추진되면서 활력을 되찾았다.
‘별의별 별시장’프로젝트는 회화, 국악, 목공예, 금속공예, 조각, 만화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시장의 빈 점포를 작업실로 꾸며 방천시장을 예술이 접목된 시장으로 재탄생 시켰다.
방천시장과 김광석길은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대표 관광지 100곳’에 선정되기도 했다.

청춘을 노래한 영원한 청춘 ‘김광석’을 그리워하며 걸어본 김광석길과 방천시장.
가수 김광석이 우리 곁에 머문 시간은 12년이지만, 끝나지 않는 그의 노래들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살아가며 우리를 보듬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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