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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vol.30 201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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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숨겨놓은 십리 길

“깎아 세운 병풍바위는 별 천지니 / 천장봉 아래서 기꺼이 즐기노라 /
산은 높고 물은 푸르러서 진경을 이루노니 / 이곳 연하동이야말로 세상 밖 그림일세.”

조선 후기 선비 노성도가 선조의 자취를 밟아 산막이 마을을 찾았을 때,
그 풍경에 감탄하며 9곳의 절경에 이름을 붙이고 읊었다던 연하구곡가(煙霞九曲歌)다.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아름다운 길로 꼽히는 산막이옛길은
사계절 내내 호젓한 자연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산책로다.

쾌청한 날씨와 짙은 녹음이 물오른 6월, 정감어린 이 길 위에서 초여름을 반겼다.

괴산호를 따라 걷는 오르막길

산막이란 험준한 산들에 마을이 병풍처럼 가로막혀 있다 하여 불리게 된 지명이다.
산막이옛길은 2011년, 괴산군이 사오랑 마을에서 산막이 마을까지
사람들이 다니던 오지의 십리 옛길을 친환경 공법으로 복원하여 조성한 산책로다.
26개의 명소와 나무받침으로 꾸며진 이 길은 연간 130만 명이 넘게 다녀가는 괴산의 대표 관광명소가 되었는데,
그 일등공신은 단연 괴산호의 수려한 풍광이다.
한마디로, 유유자적 걷기만 해도 무릉도원을 노니는 한량이 되는 길이 바로 산막이옛길이다.

산책로에 도착해 안내소 앞 지도를 꼼꼼히 살핀 후, 길을 나섰다.
뿌리가 서로 다른 나무의 가지가 한 나무처럼 합쳐져서 자라는 ‘연리지’가 입구에서 등산객들을 맞고 있었다.
연리지를 지나자 빽빽한 소나무가 울창한 숲길이 시작됐다.
이어서 소나무 동산에 소나무와 소나무를 연결하여 만든 ‘출렁다리’를
양 손을 꼭 쥐고 발끝만 보며 건너고 나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다시 오르막길을 올라 ‘연화담’에 도착했다.
오로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에 의존하여 모를 심었던 곳에 새로이 연못을 만들고
연꽃을 피게 한 이 곳 연화담에는 때마침 연꽃들이 활짝 피어 수면 위에 유유히 떠있었다.

또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 괴산호가 가장 넓게 보인다는 정자 ‘망세루’에서 숨을 고르며
푸름의 결정체 하늘, 산, 호수를 한 눈에 담았다.
이 풍경을 보고 있자니 연하구곡가가 귓가에 맴돌았다.
짧은 휴식을 마치고 산뜻하게 재출발.
1968년까지 호랑이가 살았다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같은 이야기가 담긴 ‘호랑이굴’과
산막이를 오고 가던 사람들이 여우비와 여름 한 낮 무더위를 피하며 잠시 쉬어갔다는 ‘여우비 바위굴’이 나왔다.

괴산의 한반도를 품고 걷는 내리막길

산책로의 중간쯤 오자, 다시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 기막힌 타이밍에 ‘얼음 바람골’을 지나게 될 줄이야.
골짜기 안에 바람이 산막이 옛길을 걷는 사람의 땀을 시원하게 씻어 주고,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낄 정도로 서늘하여 얼음 바람골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이 골짜기를 지나 산막이옛길의 정중앙에 만든 ‘호수전망대’로 향했다.
산막이옛길의 랜드마크이기도 한 한반도지형을 가장 잘 감상 할 수 있는 곳으로
전망대에 오르자 괴산 속의 한반도를 만날 수 있었다.
괴강에 뻗어 나온 속리산국립공원의 사은리의 지형이
호수를 향해 툭 튀어나와있어서 정말 한반도 지도와 꼭 닮아있었다.
S자를 그리는 괴산호의 물줄기가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했다.
호수의 운치에 푹 빠져 한동안 걸음을 멈추고 감상한 후, 아쉬운 발걸음을 뗐다.
다음 도착지는 ‘고공전망대’.
투명유리바닥을 따라 가슴 졸이며 걸어가서 암벽 끝과 호수 한가운데에 섰다.
평온한 호수 위로 고요한 물결을 일으키며 떠가는 나룻배. 사람의 마음을 다독이는 풍경이었다.

신선의 별장을 가로지르는 뱃길

그 후, 40개 계단을 올라 호수와 바위의 절경이 펼쳐진다는 ‘마흔 고개’ 에 도착했다.
이 마흔 고개를 기점으로 나루터까지는 내리막길이 이어지는데
나룻배가 선착장에 도착하고, 배에 올랐다. 배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산수를 감상했다.
고개를 하늘 끝까지 드니 천자봉이 보였는데,
이름 그대로, 하늘 아래 펼쳐진 자연 경관은 예술이었다.
그 수려한 자태를 하늘도 감탄하여 숨겨 놓았다는 봉우리답게 장엄하게 우뚝 솟아 있었다.
연이어 등잔봉이 나왔다. 그 옛날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간 아들의 장원급제를 위해 등잔불을 켜놓고 백일기도를 올렸다는 봉우리다.
한 시간 남짓 힘차게 걸었던 길을 배를 타고 되짚어보니 "가히 신선의 별장으로 삼을 곳"이라는 노성도의 극찬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흔적처럼 남아있는 옛길을 덧그림을 그리듯 그대로 되살려 만든 이 길에서
옛것을 되새겨 새 것을 살피고, 새로이 깨달아 가는 것이 이 아름다운 강산을 물려받은 우리의 몫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산막이옛길은 바로 이 ‘온고이지신’의 가치를 그대로 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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