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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vol.30 2015.01.09
인터뷰
R&D 전문기관답게 혁신과 창의로 무장하라

“혁신과 창의가 없는 R&D는 무의미하다”
최문기 초대 미래부장관은 딱 잘라 말한다.

그의 첫 직장이자 24년을 몸 담았던 곳, ETRI.
그렇기에 ETRI인으로서의 자부심과, ETRI에 대한 애정 또한 남다르다.

ETRI 연구원, ICU 교수, ETRI 원장, 카이스트 교수,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서 다시 현재의 카이스트 교수까지···

도전과 혁신을 거듭하며 인생의 문을 하나씩 하나씩 열어 온 그로부터
'무릇 창의와 혁신을 통해 밥을 먹고 살아야 한다, 밥 먹고 살자고 혁신하는 척 하지 말기를'
쓰디쓴 충고 한 보따리와 그 속에 감춰진 그 이상의 따뜻한 격려를 들어본다.

‘융화, 상생, 협력’

청양의 해, 무리지어 사는 양처럼 ETRI 임직원 여러분들께 을미년 한해 융화, 상생, 협력을 당부드립니다. 양은 성격이 온순하나, 동작이 무척 빠르지요. 여러분들도 무슨 일이든 미리 생각하고 빠르게 행동하시기 바라며, 더불어 모두 건강하시고 만사형통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ETRI가 초일류 연구기관이 될 수 있도록 즐겁게 일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도전과 성취의 연구원 시절

제가 연구원 시절을 보낸 1980~90년대는 소위 ‘싱글미디어’에서 ‘멀티미디어’로 넘어가는 시기였습니다. R&D 패러다임이 완전히 전환되어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우리가 도맡아 해야 했던 그런 시기였죠. ATM 기술을 개발하고, 정부의 G7 프로젝트로 HAN B-ISDN(High Advanced Nation Broadband-Integrated Services Digital Networks)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10년간 6,850억 원이 투입된, 당시로서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는데, 이것은 ETRI의 R&D 경쟁력이 한층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되었고, 당시의 기술 축적이 바탕이 되어 우리나라가 지금의 IT 강국을 일구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하여 자부심이 큽니다.
또 기억나는 것이 전전자교환기 기술의 개발입니다. 전화기 한 대 값이 당시 아파트 한 채 값에 맞먹는 100만원이었는데, 그나마도 전화를 신청하면 일 년을 기다려야 했어요. 이 기술 개발로 집집마다 전화가 1대씩 다 들어 갈 수 있는 소위 ‘1가구 1전화기’ 시대를 열었죠. 이후 유선에서 무선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이동통신 기술 개발로 이어졌는데, 당시 유럽방식인 GSM 기술을 도입하자면 해외에 적지않은 로열티를 지불해야 했기에, 독한 마음으로 독자기술 개발에 착수, 각고의 노력 끝에 결국 세계 최초로 CDMA 기술 개발을 이루어낸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ETRI가 세계적인 연구기관으로 발돋움하려면 3P 즉, Patent - Paper - Product가 중요하다고 판단, ETRI 자체에서 발간하는 논문을 SCI(Science Citation Index) 논문집으로 만드는 기획을 하였고, 결국 3년 만에 ‘ETRI 저널’을 SCI 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당시 2천명 규모의 단일 연구소 저널이 SCI 등재저널이 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IT분야 기관저널로 세계에서는 8번째 SCI 저널이 된 것입니다.
가만히 ETRI 시절을 되돌아보면, 항상 도전하는 재미가 있었고, 또 도전하기만 하면 반드시 소기의 성과를 이뤄 보람찬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탐구하는 열정으로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동료들과 힘을 모아 추진력 있게 밀고 나가보자고 격려하며, ‘할 수 있는 만큼’이 아니라 ‘실패를 하는 한이 있어도 해내야 한다’는 의지를 불태워 열심히 연구에 매진한 기억이 많습니다. 그렇게 했던 일들이 결국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고, 지금의 ETRI가 세계적인 정상급 연구소로 자리매김하는데 보탬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큰 자부심과 긍지를 느낍니다.

혁신 경영의 원장 시절

ETRI 원장 재임시절에는 R&D 경영에 있어서 혁신을 해야겠다고 판단하여 지식재산 전략을 수립했습니다. 이는 최근 3년 동안 ETRI가 이룬 ‘미국특허 3년 연속 세계 1위’라는 쾌거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ETRI 원장 시작할 때 제가 첫 번째로 공언한 것이 ‘제 임기가 끝나기 전에 원장보다 총수입이 많은 직원 3백 명을 만들겠다’는 것이었죠. 결국에 제 임기가 끝날 무렵 저보다 수입이 많은 직원을 세어보니 무려 4백 명이 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이따금씩 기술료 받은 연구원들이 저녁을 대접하겠다고 전화가 종종 오는데, 그럼 저도 기분 좋게 자장면 한 그릇 사라고 해서 같이 식사를 하기도 합니다.

창조경제의 생태계 다진 장관 시절

창조경제는 우리경제의 운영을 기존 fast follower 전략에서 first mover 전략으로 바꾸어 경제가 발전하고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것입니다. 선도적으로 기술개발을 이루고, 기술 · 문화 · 예술 · 디자인 · 타산업 등의 융복합을 이루어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만들어야 해요. 이를 위해 혁신과 도전은 필수적인 사항으로 창의적 사고와 발상으로 기업가정신을 발휘해야 합니다. 먼저 아이디어에서 창업과 산업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술, 자금 및 금융, 사업화가 연계되는 창조경제 생태계 조성이 가장 기본 사항이라 창조경제타운을 만들고, 기업, 지자체, 상공회의소들이 참여하여 지역혁신을 이루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었습니다. 모든 산업의 근간이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므로 조기교육, 인재양성, 시장형성의 선순환 생태계 마련에 집중하였습니다. 특히 융복합을 위한 IT기술의 발전은 필수요소라 5G, 빅데이터, 3D프린팅, 클라우드 컴퓨팅, 정보보호기술 발전에 힘을 쏟았습니다. 기술개발과 시장형성을 위해서는 글로벌 협력이 필수적 요소이므로 창업까지 글로벌 활동의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특히 출연연구소 활성화를 위해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를 국가과학기술연구회로 통합하고, 연구기관들 간의 강력한 협력을 위해 연구소를 뛰어 넘어 연구회에 융합연구본부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R&D혁신을 위해 ETRI가 더 분발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 이유도 창조경제를 가장 잘 이루어 낼 수 있는 기관이고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과학기술을 경제로···

IT 기술은 과학기술의 한 축입니다. 우리 선배들이 다른 분야보다 발 빠르게 내다보고, IT 산업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즉, 과학기술에서 빨리 경제로 바꾸어 내는데 성공한 것이 바로 IT 산업입니다. 마찬가지로 과학기술을 경제로 바꾸어 낼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원자력기술은 원자력산업으로, 우주기술은 우주산업으로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기술개발과 시장형성입니다. 현장에서 쓰일 수 있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하고, 기술 개발을 하더라도 비용까지 따져서 개발을 이루어 내야 합니다.
지금 가장 손쉬운 융합은 IT기술을 다른 산업에 적용시키는 것이고, 그것은 첫 단계입니다.
시장에서 3년, 혹은 5년 후에 무엇을 필요로 할 것인지 예측하고, 문제를 만들어서 기술로 풀어야 합니다. 나아가 기술 개발이 끝이 아니라, 산업화로 연계하여 제품을 만들고 기술 사업화를 해야 기술 가치가 커집니다. 정리하면 무엇을 하면 성공할 것인가 진취적으로 찾고, 기술 성공과 시장 성공을 둘 다 이루어내야겠죠. 창의와 혁신의 강도를 높일수록 그 기술의 가치는 더 커질 거라고 봅니다.

도전하고 혁신하는 ETRI를 기대하며

ETRI는 24년 일한 첫 직장이라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고, 요즘도 ETRI 옛 동료들과 자주 보고 지냅니다. 당시 ETRI에서 했던 일들이 산업화되면서 지금의 IT산업이 정착하는데 기반을 다져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ETRI 출신으로서 그런 부분에 대한 큰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살고 있고, 지금도 여전히 ETRI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ETRI가 가진 능력에 비해 혁신 의지와 도전 정신이 덜 발휘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TRI는 밥을 먹고 살기 위해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과 혁신을 통해 밥을 먹고 살아야 하는 ‘R&D 전문기관’입니다. R&D 지원 및 R&D 환경도 역시 R&D에 걸맞게 혁신되어야 하며, 과감하게 도전하고 혁신과 창의로 무장하여 R&D 기관으로서의 존재감을 확고히 하는 세계 최고 연구기관이 되어 주길 바랍니다.
무엇을 혁신할 것인지 확실한 기획과 전략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창의적인 아이템을 분명히 잡아서 도전하면 결과물도 좋고, 연구원 본인도 발전할 것입니다. 도전하고 혁신하면 연구원들의 레벨도 더 높아질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사전 연구’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도전적인 연구주제를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앞선 R&D 기관들과 경쟁하려면 작은 혁신으로는 부족합니다. 도전적으로 혁신하고, 상대를 불문하고 과감히 협력연구를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잘해왔듯이, 좋은 전통, 좋은 업적을 계속 만들어서 세계 일류의 R&D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ETRI가 국민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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