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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 2013.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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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오감으로 느끼는 아름다움_글라스하우스, 지니어스 로사이

제주는 바람과 돌이 오랜 시간동안 공들여 빚어낸 하나의 거대한 작품이다. 제주라는 걸작에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자연과 조화’ 혹은 ‘휴식과 명상’을 지향하며 아름다운 건축물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그곳이 제주이기 때문이다. 건축가들은 제주를 아름다운 자연을 품은 힐링의 공간으로 해독했다.

자연이 만든 풍경 위에 건축가의 손길이 새로운 색을 덧칠했다. 철저한 계산에 의해 세워진 건축물들은 바람에 형태를 부여하고 빛과 그늘까지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간다. 건축기행의 첫 목적지는 서귀포시 서산읍 산양리의 섭지코지로 정한다. 성산일출봉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이곳에 들어선 휘닉스 아일랜드 리조트 측은 고심 끝에 이 공간을 현대건축의 거장인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게 맡기기로 했다.

안도 다다오는 이곳에 두 개의 건축물을 세웠다. 섭지코지 끝에서 정동쪽의 제주바다를 굽어보고 있는 레스토랑 ‘글라스하우스’는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건물을 받침으로 삼아 긴 상자형태의 유리건축물을 90도로 펼쳐 앉혔다. 섭지의 바다를 그대로 끌어안은 이곳은 기하학적인 조형미를 자랑한다. 글라스하우스 뒤쪽에는 명상의 공간으로 꾸며진 ‘지니어스 로사이’가 있다. ‘이 땅의 혼령’이라는 뜻을 가진 이 공간은 들어서는 사람들의 시선과 걸음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제주의 현무암과 어우러져 따뜻한 느낌을 주는 건물은 거대한 벽에 바람의 통로를 내놓고, 그것이 제주의 절경을 담는 하나의 액자가 되도록 지어졌다. 지니어스 로사이를 통해 바라보는 제주의 하늘과 바다 건너 성산일출봉의 정경은 어떤 명화보다도 아름답다. 바람의 결을 고스란히 손끝으로 느끼며 건축물을 거닐다보면 태고의 섬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지니어스 로사이는 제주의 아름다움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고즈넉함과 어울림의 향연_방주교회, 포도호텔

섭지코지에 안도 다다오가 있다면 서귀포시 안덕면 상천리 일대에는 재일동포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이타미 준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는 그가 설계한 생태휴양형 타운하우스 ‘제주 비오토피아’ 내의 미술관 네 곳을 비롯해 포도호텔, 핀크스클럽하우스, 방주교회 등이 몰려 있다. 비오토피아 내부에 있는 물, 바람, 돌, 두손미술관의 경우엔 아쉽게도 외부인의 방문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어 관람이 여의치 않다.

그럼에도 이곳을 찾은 이유는 비오토피아 근처에 이타미 준이 설계한 방주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지은 이 건물은 얕은 연못을 만들어 자갈을 깔고 채운 물 위에 서 있다. 2010년 한국 건축가협회 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방주교회는 은빛 철제지붕과 세로로 촘촘히 살을 넣은 창이 연못의 물빛을 투영하면서 경건한 느낌을 준다. 교회 앞에서 바라보면 중산간의 구릉 아래쪽 해안에 우뚝 솟아 있는 산방산이 보인다. 마치 교회가 산방산을 끼고 바다로 나아가는 방주처럼 항해를 시작할 것 같다.

인근의 핀크스클럽하우스와 포도호텔 역시 이타미 준의 솜씨다. 인공적인 장식을 최대한 배제하고 제주의 생태를 표현한 건물들은 오름의 부드러운 곡선을 그대로 지붕에 담아냈다. ‘포도호텔’이라는 이름도 위에서 보면 여러 채가 모여 있는 모양이 꼭 포도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단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은 고즈넉함과 진정한 어울림을 보여준다.
제주의 풍경을 새롭게 덧칠하다_본태박물관, 스페이스닷원

화산암으로 이뤄진 제주에 호수가 있다고 하면 믿겠는가. 작년 11월 개관한 ‘본태박물관’ 앞에는 제법 규모가 큰 인공연못이 만들어져 있다. 제주의 광활한 하늘과 구름이 수면 위로 흘러가고, 한라산 중산간의 나무들이 실루엣을 드리우며 서 있다. 자연을 끌어당겨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낸 것이 섭지코지에서 본 건축물과 닮았다 느꼈는데, 본태박물관의 설계를 맡은 것 역시 건축가 안도 다다오였다.

문화 본연의 모습을 탐색하는 아름다운 문화 공간이라는 뜻으로 본태(本態)박물관이라 이름 붙인 이곳은 정방형의 노출 콘크리트로 지은 두 개의 건물이 기왓담으로 구분되어 있다. 건물 하나는 전통 미술 공간으로, 또 하나는 현대 미술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안도 다다오는 두 개의 공간을 병립시켜 공동의 리듬을 확보하면서 내부 공간을 전혀 다르게 구성했다. 이렇듯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방법으로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각각의 개성을 뚜렷이 표현해 냈다.

제주의 빼어난 건축물들이 모두 해외 유명 건축가들의 것만은 아니다. 2012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한 다음(Daum) 제주 본사 스페이스닷원은 국내 건축가의 손에서 탄생했다. 건축가 조민석이 설계한 이곳은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지면서도 첨단 IT기업의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면모와 수평적인 기업 문화를 담아냈다. 화산 동굴 같은 내부와 오름 같은 외부 디자인, 제주도의 화산석이 가지고 있는 적갈색과 특유의 질감을 살려낸 건물은 주위 환경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건물의 외형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친환경적인 요소들을 많이 반영하고 있어 평화롭고 건강한 녹색 공간을 표방하고 있다. 제주 지하수 보전을 위해 조경용수, 소방용수는 우수처리시설을 도입해 사용하고 있으며, 수축열시스템 도입으로 에너지 사용의 효율성을 높였다고 한다.

천혜의 자연에 걸출한 대가들의 건축물들이 세워지며 제주는 더 아름다워지고 있다. 이에 따라 여행객들에게 익히 알려진 올레길, 한라산 등의 전형적인 코스보다 조금은 특별한 제주 건축여행이 각광받고 있다. 아름다운 경치만큼이나 환상적이고 독특한 건축물에는 제주의 빛과 바람이 오롯이 담겨있다. 이 건물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색다른 경험과 활력, 그리고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자연 속에 은밀하게 녹아든 세계 거장의 건축물들은 이제 하늘과 바람과 돌과 꽃처럼 고스란히 자리 잡아 제주의 풍경을 새롭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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