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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06 201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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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변화를 피하지 말고 과감한 시도로 새로운 도약 이뤄내길…

Q.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근황을 전해주세요.

퇴직 후에도 1주일에 한 과목은 강의를 하고 있지만, 시간적으로는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은퇴 후에는 삶의 퀄리티가 유지될 수 있는 75세까지 그동안 상황이 허락지 않아 못했던 일들을 하며 살아보자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요즘 제 생활을 보면 바랐던대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무엇을 하든 건강이 허락해야 하기 때문에 운동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수영, 골프는 예전부터 해왔고, 요즘은 특히 등산을 열심히 하는 편입니다. 국내 명산들도 다니지만 해외로도 등산을 다닙니다. 일본은 3000m 이상의 높은 산이 많아 그 중 5~6개의 산에 올라가 봤고, 작년에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도 다녀왔습니다. 또 일주일에 두세 번씩 서실에 나가고 있는데,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재미도 있고 한 획 한 획 집중해서 붓글씨를 쓰다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Q. 대학으로 옮기신 계기와 교수로서 어떤 보람을 느끼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사실 처음 고려대에서 영입 제의를 받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가 1995년이었는데 16년 동안 연구원으로 살았으니, 이제부터는 제 2의 인생을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큰 결심을 하고 교수생활을 시작했는데, 누구나 새로운 조직에 들어가면 겪는 일이겠지만,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팀을 이뤄 협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들마다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시스템이 낯설었던 겁니다. 그리고 연구원 출신이기 때문에 학교에 나름대로의 기여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들더군요. 그런 만큼 연구도, 강의도,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열심히 했습니다. 특히 여러 프로젝트를 제안하여 정부 과제들을 수주해 고려대의 ICT분야 연구 역량을 키우는 데 한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즐거움은 연구소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또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며 계속 인연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 교수로서 큰 보람과 행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현 시대의 과학기술자들이 꼭 갖추어야 할 덕목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순수과학 분야는 경우가 다르겠지만, 요즘 ETRI처럼 응용기술을 다루는 조직에서 개인이 두각을 나타내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시절에만 해도 지금과 상황이 달라서, 하고 싶은 연구주제를 자유롭게 제안하고, 연구방향을 주도해 나갈 수 있었으며, 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도 지금보다 쉬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즘 연구자들은 심한 경쟁 속에서 가능성 높은 연구, 현실적인 연구만 시도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연구 환경의 문제도 있을테지만 연구자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할 것입니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말고 항상 참신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시도하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으면 앞선 기술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항상 ‘왜’ 라는 질문을 던지고 새롭게 생각해야만 엔지니어로서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Q. ETRI 재직 시절 주력했던 연구와 인상 깊은 추억에 대해 들려주세요.

ETRI에 들어가자마자 실장을 맡아 처음으로 맡았던 프로젝트가 기억에 남는군요. 통신 분야는 크게 교환 기술, 전송기술, 단말기기술로 나뉘는데, 저는 통신 이라는 것 자체가 이용자중심의 기술이므로 단말기기술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석·박사 시절 제 전공분야는 통신과 컴퓨터를 융합해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는 텔레매틱스 분야였는데, ETRI에서 처음 맡은 프로젝트가 ‘DDD 공중 전화기 개발’이었습니다. 요즘은 거리에서 공중전화를 찾는 것도 힘들어졌지만, 당시만 해도 공중전화가 중요한 통신수단이었지요. 그런데 기존의 공중전화기는 10원짜리만 사용가능했기 때문에 50원, 100원짜리 동전도 사용가능한 공중전화가 필요했던 겁니다. 그래서 저희는 마이크로컴퓨터를 활용한 새로운 공중전화기를 설계했는데, 이는 기계적인 요소는 최소화하고 컴퓨터 기능을 중심으로 동작하는 새로운 방식의 것이었습니다. 기계적인 요소를 축소시킴으로써 고장율도 훨씬 낮출 수 있었지요. 구조가 간단하여 100여 개가 넘는 중소기업이 제작 납품한 때도 있을 정도로 중소기업이 선호하는 개발품이었습니다.
연구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데, 여직원협의회 고문을 상당기간 맡기도 했으며, 축구동호회 회장도 15년이나 맡았습니다. 연구단지 체육대회에 나가 대회를 준비하느라 열심히 연습했던 기억, TDX소프트웨어개발부장 시절에 8개실 풀리그로 족구대회를 몇 달 동안 진행했던 기억도 모두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Q. 30대 후반에 접어든 ETRI의 새 역할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견을 부탁드립니다.

ETRI를 떠난 이후에도 늘 관심을 갖게 되더군요. 세계 특허 1위의 위업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ETRI의 역사를 만들어온 수많은 동문들의 합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재 위치에 만족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TRI는 이제 변화해야 합니다. 아니, 이미 20여 년 전부터 변화를 시도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단기간에 ‘압축성장’을 이루는 동안 기업들은 엄청난 발전을 이뤘습니다. 과거에는 ETRI에게 기술을 배워갔던 대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기술 경쟁력을 키워 지금은 ETRI와 동등한 수준에서 경쟁을 하고 있으며, 일부 분야에서는 ETRI를 앞질러 있습니다. 이제라도 ETRI는 변화를 결단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무엇을 바꿔야하는가’에 대해 분명한 방향을 설정해야 할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ETRI는 기업이 할 수 없는 원천연구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원천기술을 연구 하는 조직과 상용기술을 연구하는 조직을 분리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원천 연구를 하는 조직은 PBS식 연구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하여 도전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형식적인 절차를 줄이고 결과에 대한 평가까지 연구소 내부적으로 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료 수입과 정부출연연구비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여 원천연구에 집중 지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30대 후반에 다다른 ETRI가 변화를 피하지 말고 과감한 시도로 새로운 도약을 이뤄내길 바랍니다.

Q. 앞으로의 계획과 바람은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거창한 계획은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 10년을 알차게 보내려면, 우선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일순위일 것입니다. 그동안 출장차 외국을 많이 다녀봤기 때문에 특별히 더 가보고 싶은 국가는 없지만, 더 늦기 전에 못 가본 외국의 산이나 골프장을 찾아 다녀보고 싶은 바람도 있습니다. 또한 서도(書道)를 통해 정신적인 안정도 찾으면서 후회 없는 10년을 즐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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