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간행물 > 연구원 소식지  



special 2003|달의 움직임을 찾아가는 3월의 절기
글_ 박 봄 |자유기고가


24절기는 계절을 가늠하는 기준이며 이 중에는 명절 또는 그에 버금가는 날도 있다. 세시풍속은 음력을 기준으로 하여 다달이 행해지는 주기전승의례로서, 계절에 따른 의례라 하여 계절의례, 또는 계절제라고도 한다.

고대 중국에서 농사와 기상의 상관관계를 설정한 일종의 농사력인 이것은 천문학상으로 지구의 공전 궤도를 24개의 지점과 일치시킨 것으로, 황도 360도를 24등분하여 15도마다 하나의 절기를 두어 24절기를 얻고 이 중 6절기를 한 계절, 사계를 1년으로 삼은 것이다. 입춘, 우수에서 시작하여 소한, 대한까지 도합 24개의 절기를 두어 반달마다 찾아오도록 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24절기는 춘추시대 황하 유역에서 유래한 것으로, 당시에는 춘분, 하지, 추분, 동지만 있었던 것이 점차 세분되어 진한시대에 와서 완성되었다.

우리의 계절은 음력 정월을 시작으로 3개월 단위로 춘하추동(春夏秋冬)을 구분한다. 우리가 흔히 음력이라고 하는 것은 원래 태음태양력(太陰太陽曆)의 준말로서 동양에서는 계절을 바로 알기 위해 12절기와 12중기로 된 24기(氣)를 음력의 역일(曆日)에 배당하여 썼다.

태음태양력(음력)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알기 어려울 때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역일과 계절 사이에 한 달의 차이가 생긴다. 특히 음력 윤달이 든 해는 같은 달이 반복되기 때문에 계절을 가늠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음력은 24기를 정하여 쓴다. 이는 춘분점을 기준으로, 황도(黃道)를 동쪽으로 향해 15도의 간격으로 1기(氣)씩 배당한 것이다. 태양은 황도상을 동으로 이동하여 1태양년에 천구를 1주하는데 각 기(氣)를 양력의 대략 일정한 날에 지나게 된다. 그래서 양력으로는 날짜가 일정하지만 음력으로는 일정치 않을 뿐더러 24기가 우리 기후와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다.

우리 속담에 ‘대한(大寒)이 소한(小寒) 집에 놀러왔다가 얼어죽었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대한 때보다 소한 때가 더 춥다는 뜻으로, 24기가 우리나라 기후에 맞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원래 24기의 이름은 주(周)의 왕조가 득세할 때 화북(華北)의 기상상태에 맞춰 붙인 것이다. 이것은 대체로 계절을 알려주고 음력에 윤달을 두는 지표가 된다는 뜻이다.

24절기 중 12개의 절기는 양력 월 상순에, 12개의 중기는 하순에 1개씩 들어있다. 동양에서는 4계절을 각각 입춘·입하·입추·입동으로부터 시작한다. 중춘(仲春)의 월중을 춘분, 중하(仲夏)의 월중을 하지, 중추(仲秋)의 월중을 추분, 중동(仲冬)의 월중을 동지로 정하여 4계절의 구분이 명확하다. 서양에서는 2분(分) 2지점(至點)을 경계로 하여 4계절을 나누고 있다. 24기에 순차로 매긴 번호를 기번(氣番)이라고 한다. 대개의 경우 동지를 ‘0’으로 하고 소한 ‘1’, 대한 ‘2’ 의 기번으로 한다. 동지의 기번을 ‘0’ 이라 한 까닭은 고대 동양력에서 역의 계산의 출발점을 동지에 두었기 때문이다. 태음태양력에서는 동짓날을 1월에 두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기번이 언제나 고정된 것은 아니다. 송나라 원가력(元嘉曆)의 경우는 우수(雨水)를 기번으로 했다.

봄의 첫 달인 정월에는 24기 가운데 봄에 들어선다는 입춘(立春)과 눈이 녹아서 비나 물이 된다는 우수(雨水)라는 절기가 있다. 입춘이 때로는 음력 섣달에 드는 수도 있다. 원래 24절기가 태양년을 태양의 황경에 따라 24등분하여 계절을 세분한 것이기 때문에 양력 날짜에 고정되어 있어 입춘은 양력 2월 4일께가 되며 우수는 2월 19일이 된다.

2월에는 겨울잠을 자던 벌레들이 깨어 나온다는 경칩(驚蟄, 양력 3월 6일께)과 봄기운이 이미 가운데로 들어섰다는 춘분(春分, 양력 3월 21일께)이 있다.

3월에는 만물이 맑고 깨끗하며 밝고 정결하게 생장케 한다는 청명(淸明, 양력 4월 5일께)과 비가 충분히 내려서 곡식이 잘 자도록 한다는 곡우(穀雨, 4월 20일께)가 있다.

여름의 첫 달인 음력 4월에는 여름철이 이미 들어섰다는 입하(立夏, 양력 5월 6일께)와 작물이 자라나서 약간의 곡식이 여문다는 소만(小滿, 양력 5월 21일께)이 있다.

5월에는 보리를 베고 벼를 심는다는 망종(芒種, 양력 6월 6일께), 여름을 알리며 음기(陰氣)가 처음으로 생기고 해가 북쪽으로 이동한다는 하지(夏至, 양력 6월 21일께)가 있다.

6월은 아주 더운 달임을 대(大)와 소(小)로 나누어서, 더위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소서(小暑, 양력 7월 7일께)와 대서(大暑, 7월 23일께)가 있다.

가을의 첫 달인 7월에는 가을에 들어섰다는 뜻의 입추(立秋, 양력 8월 8일께)와 더운 기운이 장차 물러나고 더위가 점차적으로 그친다는 처서(處暑, 양력 8월 23일께)가 있다.

8월에는 음기(陰氣)가 점점 더해가면서 이슬이 백색으로 된다는 백로(白露, 양력 9월 8일께)와 가을 기운이 이미 가운데로 접어들었다는 추분(秋分, 양력 9월 23일께)이 있으며, 9월에는 이슬이 차가운 기운에 의하여 장차 응결되려고 한다는 한로(寒露, 양력 10월 8일께)와 이슬이 응결하여 장차 서리가 되어 내린다는 상강(霜降, 양력 10월 23일께)이 있다.

겨울의 첫 달인 10월은 겨울철이 이미 다가왔다는 입동(立冬, 양력 11월 7일께)과 서리가 더하여 눈이 되지만 적게 내린다는 소설(小雪, 양력 11월 23일께)이 있다.

동짓달은 매우 춥고 눈이 많이 온다는 대설(大雪, 양력 12월 7일께)과 겨울이 극에 달았지만 양기(陽氣)가 비로소 생기고 태양이 남쪽에 이른다는 동지(冬至, 양력 12월 22일께)가 있으며, 섣달은 추위가 극심함을 알리는 소한(小寒, 양력 1월 6일께)과 대한(大寒, 양력 1월 21일께)이 있다.

이처럼 절기와 중기가 다달이 있으면서 계절의 특성을 말해주지만 이들 24기와 우리나라의 기후가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24기의 이름은 주(周)왕조 때 화북의 기상상태에 맞춰 붙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날과 같이 생태계가 엄청나게 달라진 상황에서는 더욱이 들어맞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 기후와는 다르다 하더라도 우리의 오랜 주생업이었던 농경과 관련하여 24기는 상당한 구실을 했다. 그래서 24기 가운데에는 동지처럼 큰 명절도 있고 비록 명절은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날들도 있었다. 이는 24기가 우리의 세시명절, 그리고 이 때에 행하는 세시풍속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special 2003 |나무에 물이 오르는 경칩驚蟄
글 _ 주강현 | 우리민속문화연구소장 | incus22(at)chol.com
자연의 이치는 참으로 묘한 법이다. 날씨는 여전히 쌀쌀하고, 늦샘추위까지 불어닥치면 제법 춥기조차 하다. 일교차가 심하여 환절기 감기도 많이 들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봄은 봄이다. 경칩에 접어들면 산록의 얼음은 그야말로 눈 녹은 듯이 녹아내리고 나무에 물이 오른다.
그래서 경칩이 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은 ‘개구리가 눈뜬다’는 표현이다. 경칩은 완연한 봄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우수와 춘분 사이에 끼어있으니 음력으로는 2월, 약력으로는 3월 5일경이다. 겨우내 동면에 들어갔던 파충류들이 기지개를 피는 날. 그래서 이 때쯤이면 논두렁이나 길바닥에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개구리를 쉽게 볼 수 있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아들고 들녘에는 아지랑이가 봄이 무르익었음을 알린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니 이 날 온갖 행사가 벌어진다. 논 또는 웅덩이에서 개구리알을 건져먹으면 몸에 좋다고 한다. 개구리알이지만 표현은 ‘용알 먹는다’고 하여 무언가 거대한 꿈에 의탁하는 형식을 보여준다.
이 날부터 흙일을 해도 좋다고 하여 벽에 흙을 바른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흙이 녹아나서 집안 수리가 가능해지는 시점이기도 하다. 경칩에 벽을 바르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하여 벽을 바르거나 담을 쌓기도 한다. 해동이 되어 흙에 물을 섞어 벽을 발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논두렁에서는 논둑붙이는 일이 벌어진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논둑이 해동되면서 갈라지거나 무너진다. 가래를 이용하여 협동으로 논둑을 붙이는 일은 논농사에서 첫 번째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물론 쟁기를 얹혀서 논두렁을 갈아엎는 일도 이 때쯤 벌어진다. 한 해 농사의 채비를 갖추는 것이다.
지방에 따라서는 이 날 보리싹으로 점을 친다. 물오른 싹의 상태를 보아 농사를 예감한다. 풍농점(豊農占)을 통하여 한 해 농사의 풍흉을 가리는 것이다.
이같은 풍습들은 거개가 사라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현대적인 도시의 삶 속에서도 경칩의 전통은 남아있어 집수리가 대대적으로 벌어지는 절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장이, 목수 같은 일꾼들의 일손이 가장 바빠지는 절기이다.
많은 풍습이 사라졌지만, 과거보다 더 극성을 부리면서 이어지는 풍습 중의 하나가 고로쇠 수액 마시기 풍습이다. 경칩에 마시는 수액은 만병에 유효하다고 하였다. 문헌에 따라서는 반드시 고로쇠만 먹는 것은 아니다. 단풍나무를 베어 나무에서 나오는 수액을 먹어도 좋다고 하여 지방에 따라서는 단풍나무즙을 먹기도 한다. 물론 고로쇠나무 자체가 단풍나무과에 속하니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단풍나무과에는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당단풍나무 등 여러 종이 있다. 거우제나무의 수액도 단연 인기다. 그러나 단연 강력한 풍습으로 남은 것은 고로쇠 수액 마시기다.
고로쇠나무는 남부지방의 해발 300미터 이상되는 산간 어디에나 널리 분포된다. 산간에 자리잡은 나무인지라 밤기온이 영하 3-4도, 낮기온은 영상 10도로 일교차가 15도 정도로 되면 고로쇠수액이 많이 나온다. 너무 높은 고산지대에서는 일교차가 작기 때문에 수액 채취에 적당하지 않다. 고로쇠는 20여 미터로 성장하는 낙엽고목으로 잎은 단풍잎처럼 5 - 7개로 갈라지며 꽃은 5월에 핀다.
지리산의 산촌사람들은 경칩을 전후하여 산으로 올라간다. 고로쇠나무의 밑둥에 칼자국을 내고 비닐봉지 따위를 걸쳐둔다. 그 밑에는 플라스틱통을 설치하여 수액이 졸졸 흐르도록 되어있다. 그래서 고로쇠를 채취하는 계곡에 들어서면 흡사 응급병원실의 링거 꽂은 환자들처럼 기이한 풍경을 자아낸다. 자신의 몸을 상처내서 많은 이들의 몸을 고쳐주는 수액이니 산신이 내린 젖이라고 할까. 고로쇠는 단연 수액이 많다. 봄이 와서 주체할 수 없이 솟구치는 수액을 사람들이 슬쩍 가로채는 격이다. 그래서 지리산 계곡의 고로쇠숲에는 곳곳에 통을 벌여놓은 진풍경을 볼 수 있다. 모든 생명있는 동식물은 봄을 즐긴다. 봄은 약동의 계절이기 때문. 고로쇠라고 예외가 아니다. 고로쇠는 왜 경칩에만 나올까. 물론 반드시 경칩일에만 수액을 채취하는 것은 아니다. 우수를 전후해서부터 시작하여 경칩 무렵이면 절정에 달할 뿐, 전후시기에 넓게 채취한다. 가령 거제 고로수액은 전국에서 제일 먼저 1월 20일경부터 2월말까지 채취한다. 다른 지역보다 1개월여 빨리 채취되어 고로쇠약수제와 함께 외지사람들을 손짓한다. 풍토에 따라 수액이 오르는 시기가 약간씩 차이가 난다.
그러나 수액은 치밀어 올라오는 가장 적절한 시기가 있는 법이다. 경칩이 바로 그 절정에 해당된다. 바꾸어 말하면 경칩에는 모든 만물이 소생하여 새롭게 재상되는 자연의 시간임을 알려준다. 선조들이 경칩이란 절기를 설정하여 계절이 바뀌는 분기점으로 삼은 지혜가 새삼 놀랍다.
자연에게 감사할 일이다. 산에게 감사할 일이다. 그리고 경칩이란 절기만 되면 어김없이 물이 오르는 자연의 신비에 대하여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최고의 감사의 뜻은 역시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면서까지 수액을 내주는 고로쇠에게 인사할 일이다.
시대가 변하였지만 봄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한결같다. 자연의 이치도 변한 것이 없다. 변한 것이 있다면 사람들의 탐욕뿐이다. 갖 눈뜬 개구리를 잡아먹는 반생태적인 일들이 벌어지기도 하고, 고로쇠물을 적당히 마시는 것은 좋은 일이나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호스를 들이대서 수액을 아낌없이 빨아낸다. 봄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심성이 그만큼 반자연적으로 변하였음을 알게 한다. 봄을 봄답게, 자연의 흐름에 의지하면서 공생하는 법칙이 사라지고 있는 세태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게 경칩이 오면 봄이 오는 것이며, 어느 노랫가사처럼 봄날은 훌쩍 지나쳐 가고 여름을 준비하는 것이리라.
 
special 2003 |춘분 풍속
글 _ 정승모 | 지역문화연구소장 rcrc1(at)hanafos.com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春分)은 24절기 중 경칩(驚蟄)과 청명(淸明) 사이에 들어있는 절기다. 춘분은 양력으로 3월 21일이므로 중기에 해당하며 음력으로는 2월 중에 있다.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던 태양은 이 때부터 춘분점을 통과하여 북쪽을 향한다.
서양역법과 중국역법의 차이는 대략 여덟 가지로 나타나는데, 그 중 하나는 중국법의 절기가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冬至)를 기점으로 하는 반면, 서양법은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춘분(春分)을 기점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서양을 양분하는 이러한 구분법은 잘못된 것인지 모른다. 예컨대 예수 성탄절이 동지에서 기원하였고 부활절이 춘분과 관계가 있다는 속설이 있는 바, 동지가 중세 게르만 민족의 중요한 제일(祭日)이라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에 춘분을 국가적인 제일로서 중요하게 여겼다.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토신(土神)에게 제 지내는 날을 사일(社日)이라고 하는데 춘분(春分)과 추분(秋分)에서 가장 가까운 앞뒤의 술일(戌日)을 각각 춘사일(春社日)과 추사일(秋社日)이라고 정하였다. 춘사일에는 곡식의 생육을 빌었고 추사일에는 그 수확을 감사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예전(禮典)의 제례(祭禮)에 관한 사항을 보면 겨울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장한다는 빙신(氷神)인 사한(司寒)에 대한 제사는 춘분과 계동(季冬), 즉 12월에 한다고 하였다. 서울 남쪽 교외에 단을 쌓고 얼음을 저장하는 계동과 얼음 출고(出庫)를 시작하는 춘분에 때를 맞추어 제사하는 것이다. 형조(刑曹)에서는 사형에 처할 죄수가 있으면 춘분 전에 탈없는 날을 택하여 형을 집행하였다.

조선 숙종 때 실학자 홍만선(洪萬選)이 엮은《산림경제(山林經濟)》라는 책을 보면 춘분 때 과일나무 밑에서 절구질을 하면 열매가 튼튼하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여 이 날을 종수(種樹), 즉 나무 심는 날로 삼았다고 하였다. 또 춘분이 2월 초하룻날에 들면 일 년 농사를 망친다고 하였다. 우리가 흔히 꽃샘추위라고 하는 2월 초순에 부는 매서운 바람은 풍신(風神)이 샘이 나서 꽃을 피우지 못하게 불어대는 것이라고 해석했는데 그래서인지 어촌에서는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고 먼 길 가는 배도 타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의 꼬여만 가는 세상일을 눈이 오는 춘분에 빗댄 글도 있듯이 춘분 때면 모두가 꽃이 피는 봄을 기대하기 때문에 춘분에 느끼는 추위 또한 오히려 한겨울보다 심한 것이다.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 1571-1637)은 덕수 이씨 명문가 출신으로서 용재 이행이 그의 증조부이고, 율곡 이이, 택당 이식, 그리고 이순신 장군 등 쟁쟁한 인물들이 그와 가까운 일가로 「세시기(歲時記)」가 본격적으로 출간된 19세기 이전에 가장 풍부한 세시기록을 남긴 당대의 문인이다. 그의 문집 속에 있는 글을 잠시 인용한다.

“1610년 2월 29일은 춘분이다. 국법에 춘분을 넘기면 수령이 권속을 이끌고 부임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29일에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 외곽에 있는 대산 별장에서 잠시 기다린 다음 담양(潭陽) 읍인(邑人)이 마중 나오기를 기다렸다. 3월 16일에 삼전도 나루를 건너 남행길에 올랐다. 말 위에서 즉흥적으로 한 수 읊는다.”고 하였다. 관리들에게도 춘분이 처신의 한 기준 시점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기에는 춘분 때 관리들에게 하루 휴가를 주었다.
앞서 춘분과 추분을 전후한 시점에 잡은 날을 사일(社日)이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제사 때 어떤 음악을 연주하였을까. 속설에 고(鼓), 즉 북은 춘분의 음악이고 종(鐘), 즉 쇠북 종은 추분의 음악이라고 하였다. 북소리의 의미는 발흥진작(發興振作), 즉 일으키는 데 있고 종소리는 동성청명(動成淸明), 맑게 이루는 데 있으므로 각각의 제사의 뜻과 일치한다고 하겠다.
춘분 풍속은 지금은 잊혀져 그런 것이 있었나 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 고속(古俗)에 춘분을 맞아 국을 끓여 백가지 과일나무에 뿌리면 결실을 많이 본다고 하였으며, 또 이날 술을 마시면 귓병이 낫는다는 민간신앙도 있었다. 기독교인들에게 부활절의 의미가 그렇듯이 춘분은 그야말로 만물이 소생하여 새 삶을 시작하는 시점인데 비기독교인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춘분을 새로운 각오를 다지며 발흥 진작하는 우리의 고유 명절로 되살리는 것은 어떨까.
 

처음페이지 마지막페이지

 

문의 :  홍보팀 김희철    042-860-5866    k21human(at)etri.re.kr